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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5. 2024

[08]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다

여행 일곱 번째 날

2023년 10월 5일 목요일


오늘은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즐기려면 구글맵을 보지 말고 길을 잃어보라고 한다. 체크아웃하기 전 아침 산책을 했다.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메인 도로가 아닌 옆 골목으로 목적 없이 다녀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공원이 나왔다. 베네치아에서 처음 본 잔디 깔린 공터가 신기했다.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학교는 보이진 않는데 수학여행을 온 건지 알 수 없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었다. 여행 중 아이가 현지 놀이터에서 노는 여유 있는 장면을 연출해 보고 싶었는데, 아들은 유럽까지 와서 굳이 놀이터를? 이라며 시큰둥했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했다. 기차역은 2분 거리인데 우리가 탈 기차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어 역 앞 성당에 갔다. 산타 마리아 디 나사렛 교회, 스칼치 다리 앞에 있어 스칼치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우리 숙소에서 종탑이 보이던 곳이다. 입장료도 없고 기차역 바로 옆 건물이라 가볍게 들렀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장식과 프레스코화에 감탄했다. 종교개혁으로 권위가 떨어진 가톨릭 교회는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건축 장식으로 대중의 신앙심을 자극하려 했다. 그들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반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를 비롯한 당대 다양한 지식인 서적을 금지하고 사상을 통제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근대적 발전을 가로막고 쇠퇴를 초래했다. 서양미술사에서 이탈리아 미술은 바로크 이후 주 무대에서 사라졌다. 과도한 성당 건축은 종교개혁을 불러일으켰고, 반종교개혁은 더 화려한 성당과 강한 신앙심을 강조했다. 이는 진정 종교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환희'와 유사한 분위기의 조각이 신기했다. 베르니니의 영향인지 이 주제는 늘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건지 궁금했다. 구글을 검색해도 베네치아에서 주로 활동한 독일 화가라는 것 외엔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환희'


이번에는 이탈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트랜 이탈리아는 국철, 이탈로는 사철이다. 주로 트랜 이탈리아는 국경을 넘을 때, 이탈로는 국내 이동에서 이용한다고 한다.


피렌체 숙소인 보카치오 호텔은 기차역에서 도보 4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직원들이 굉장히 활발하고 유쾌했다. 체크인  벽면의 초상화를 보고, "보카치오네요."라고 했더니, 직원이 "응, 우리 아빠야"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오, 저 직원 아빠가 보카치오야? 그래서 보카치오 호텔이구나!"라고 했다. 아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순간 보카치오 후손이 운영하는 호텔인가 했다. 아니야. 아니야. 직원의 장난이라고.

피렌체 여행 필수 코스인 두오모에 올라가려면 사전에 '브루넬레스키 패스'를 예약해야 한다. 이때 두오모 입장 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 두오모 방문을 시작으로 3일 동안 패스에 포함된 총 5 장소를 방문할 수 있다. 두오모만 본다면 상관없겠지만 이왕 패스에 포함된 다른 장소를 모두 둘러보려면 두오모 입장 시간을 피렌체 도착 시간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 피렌체에서 지내는 3일 동안 남은 장소를 볼 수 있다.


기차 이동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오모를 보기 위해 다시 나온 이유이다.

우리를 본 또 다른 직원이 짧은 한국말로 물었다.

"어디가?"

아이가 대답했다.

"두오모 가요."

"와, 진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앞 광장

숙소에서 두오모 가는 길,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피렌체 역 앞에 위치하여 역 이름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이다. 이 성당 내부에는 르네상스 최초로 원근법을 적용한 공간 연출로 유명한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 벽화가 있다. 피렌체에서 일정이 빡빡했지만 시간을 쪼개서 방문하려 했는데, 구글 후기를 찾아보니 현재 복원 작업 중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피렌체를 또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마사치오 '성 삼위일체' (1425~1428)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10월인데 이날 기온이 29도였다. 햇볕이 엄청 뜨거웠다.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예약 시간에 맞춰 성당 내부를 통해 입장했다. 두오모에 오르려면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준세이는 아침 일찍 두오모에 올라가 석양이 질 때까지 아오이를 기다린다.


내가 예전에 갔을 때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동시에 있었고, 창밖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가 큐폴라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시간제한이 생겼다. 우리는 17:15~18:00으로 예약했는데, 이 말은 18:00시에는 무조건 큐폴라에서 내려와야 한다. 준세이처럼 하루종일 있을 수 없다. 큐폴라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으면 예약시간에 맞춰 최대한 빨리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 동선을 분리하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힘들어 잠시 쉬고 싶어도 쉴 공간이 없었고 좁은 계단에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기에 멈출 수도 없었다.

2005년, 피렌체 두오모를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때는 사진 속 모습처럼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줄 서서 올라가고 있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2005년, 피렌체 두오모 계단 이동 통로


2005년, 피렌체 두오모 마지막 계단

아이가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이는 힘든 기색 없이 가볍게 올라갔다. 문제는 나였다. 피자 파스타를 폭풍 흡입하고 올라왔더니 피자 파스타도 함께 올라왔다. 계단 463개면 대략 아파트 30층에 해당된다. 평소 아파트 계단 오르기 운동이라도 할 걸 후회가 되었다.

큐폴라 정상에 도착하여 널브러져 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사진  장 찍었다. 벌써 6시이다. 직원들이 내려가라고 재촉한다.


다시 내려와 마트에서 사 온 간식으로 호텔 방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쉬었다. 내일은 피사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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