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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6. 2024

[09] 피사의 사탑과 부르넬리스키의 돔

여행 여덟 번째 날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오늘은 피사에 간다. 피사는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로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피사는 탑 앞에서 사진 찍는 것 외 특별한 게 없어 보여 예전 이탈리아 여행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눈에는 기울어진 탑 자체가 흥미로운 거 같다. 아이가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 다음으로 가고 싶어 했던 곳이 피사였다. 내가 처음 계획에는 없었던 피렌체를 일정에 넣은 이유 중 하나도 피사를 가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피사의 사탑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피사에 있지."

"응???"

브루넬레스키 돔, 에펠탑처럼, 피사가 만든 탑인 줄 알았다고 한다.



피사는 로마 시대에 로마의 군항이었고, 중세 시대에는 아말피, 제노바,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의 강력한 해상 공화국이었다. 피사가 항구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현재에도 바다와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해수면 하강으로 항구 기능을 상실하고 내륙 도시가 되었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1차 십자군 원정 이후 12세기 초가 전성기였다. 그리고 사라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피사 사탑을 세웠다.



아이가 탑에 올라가고 싶어 해서 알아본 바로, 한때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되었지만 보강 공사 이후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전 예약한 시간당 정해진 인원, 만 8세 이상만 가능하다. 여행 당시 이는 만 6세였다. 아이는 많이 아쉬워하며 자기가 만 8세가 되면 다시 가자고 했다. 피사가 경주인 줄 아니. 이다음에 자라서 너 친구들과 가렴.



피사의 사탑을 가려면 피사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피사 로소레 역에서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로소레 역으로 갔다. 역에 내려 몇 분만 걸으면 저 멀리 피사의 탑이 보인다.

이날도 정말 더웠다. 30도가 넘었던 거 같다.



피사도 한 번 가 볼만한다. 실물로 보니 탑과 성당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했다.

성당 내부를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탑이나 박물관 티켓을 구입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성당만 들어가는 입장권은 따로 판매하지 않았다. 예약제로 바뀌면서 개별 티켓보다 통합권을 위주로 판매하는 것 같다. 문을 활짝 열어두어 아쉬운 대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피사 성당은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초기 바실리카 양식의 평평한 천장이 특징이다. 성당, 세례당, 종탑 3개의 건물로 구성된 것이 전통적인 성당건축방식인데, 그 전통이 시작된 곳이 피사 대성당이다.

아이는 탑을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젤라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피사에서 머문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피렌체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우리가 가진 브루넬레스키 패스는 전날 올라간 두오모를 포함하여, 산타 레파라타, 세례당, 오페라 박물관, 조토의 탑 총 5군데 입장 가능하다. 대부분 5~6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으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는 배가 많이 고프지만 참겠다고 했다. 아이가 밥 먹겠다고 했으면 박물관은 포기했을 텐데, 아이가 참겠다니 나도 참아야 했다. 조토의 탑은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줄이 길어서 패스하고 산타 레파라타, 세례당, 오페라 박물관을 방문했다. 호텔 조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다니느라 몹시 피곤했다.


산타 레파라타 지하 예배당부터 갔다. 피렌체 두오모를 지을 때 이 자리에는 1000년 된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대성당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지하에 또 다른 교회 유적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줄을 잘 서야 한다. 대성당 입구 줄과 산타 레파라타 줄이 따로 있다. 대성당 입장은 무료이고 줄이 엄청 길다. 유료인 산타 레파라타로 입장해서 대성당을 같이 보는 것이 좋다.


여행 중 핸드폰 공기계에 유심을 넣어 아이에게 주었다. 만약의 경우 엄마 아빠를 잃었을 때 연락할 수 있고 아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많이 돌아다닌 만큼 유난히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날이다.



로마 시대에 세운 오래된 성당은 계속 중축이 이루어졌고 각 부분별로 제작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프레스코화와 바닥 모자이크가 특히 흥미로웠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오래된 절들이 생각났다.



지하에서 다시 올라오면 어제 우리가 오른 두오모가 있는 대성당 내부이다.

르네상스 성당은 바로크 성당과 달리 화려하지 않다. 대신, 소박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돔 내부에는 바사리와 제자들이 그린 천장화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천장화라는데 높이가 높아서 그런지 그렇게 큰 지는 잘 모르겠다. 바사리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전기를 쓴 미술사가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바사리가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충분히 훌륭한 천장화이지만 르네상스 천재 화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바사리 스스로가 화가이기 때문에 르네상스 화가들의 위대함을 더 잘 알지 않았을까.


대성당 내부에 초기 르네상스 화가인 우첼로와 카스타뇨의 기마상이 있다. 청동색이 우첼로, 대리석 색이 카스타뇨 그림이다.



산 조반니 세례당은 작아서 한번 둘러보면 끝이다. 천장화가 볼 만하다는데 복원 중이어서 아이가 실망했다. 유럽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늘 복원 중인 곳이 있는 것 같다. 세례당의 기베르티 청동문은 오페라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원래 위치에는 복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밖으로 나오면 본인이 만든 두오모를 바라보고 있는 브루넬레스키 동상이 있다.



오페라 박물관에서 아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기베르티의 청동문이다. 보관 상태가 너무 좋고 반짝거려 오히려 감흥이 적었다. 고풍처리를 안 한 복제품 같았다.



조토의 성모상. 최근에 조토의 본토 발음이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 이 조각을 처음 본 남편과 아이도 꽤 인상적이라고 했다. 갑자기 현대 작품을 만난 듯했다.



미켈란젤로의 두 번째 피에타. 텅 빈 넓은 공간에 이 작품만 놓여 있어, 작품의 숭고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아이와 함께 한참을 작품 앞에 머물렀다.


박물관 안내도에 '브루넬레스키의 테라스'라고 적힌 표시판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브루넬레스키 돔이 한눈에 들어오는 박물관 옥상이 나왔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이 층집 창가에 한 아저씨가 창을 열고 두오모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무심한 일상이 교차하는 묘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너무 배가 고파 맛집을 찾아갈 기력도 없고 숙소 앞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갔다. 피렌체는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한데, 과거 가죽 공방이 많았기 때문에 막 가죽을 벗긴 고기를 스테이크로 먹었다고 한다. 보통 1kg 이상씩 판매한다. 티본스테이크 1kg는 가격도 비싸지만 양이 많아서 먹다가 질릴 거 같았다. 피자, 파스타를 함께 먹고 싶기도 하고.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스테이크 일 인분 0.5kg 메뉴가 있기 때문이었다. 흔히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하는 방식대로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를 주문했다.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주문하면 매번 컷팅이 안되어 나온다. 옆 테이블을 보니 한 커플이 일인 일피자 식사 중이었다. 그래서 피자를 잘라주지 않나 보다. 배가 고파 그런지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내일은 마지막 여행지 로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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