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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7. 2024

[10] 피렌체에서 로마로

여행 아홉 번째 날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피렌체에서 로마로 떠나는 날이다. 조식 후 베키오 다리까지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조식 장소는 호텔 옆 카페이다. 평범한 카페인데, 조식 시간에는 내부 통로를 통해 입장한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작은 호텔이 많은 것 같다.

호텔 내부의 카페 연결 통로, 조식 시간에만 오픈한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아르노 강이 나온다. 강을 따라 베키오다리까지 걸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강물 위로 오래된 다리와 건물 반영되어 그림 같았다.


베키오 다리는 로마 시대에 세운 다리로 중세 시대에는 보석상이 들어와 있었다. 다리 위로 상점이 즐비한 것이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와 비슷하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았다. 고풍스러운 나무문 셔터가 눈길을 끌었다. 오픈할 때 옥의 문처럼 위로 올려 고정한다.

베키오 다리는 일몰 사진 찍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린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오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했다. 11시에 숙소를 나서서 도보 4분 거리의 기차역에서 11시 43분 기차를 타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기차앱을 확인하니 우리가 탈 기차가 연착이었다. 시간이 조금 남지만, 다른 것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아이에게 젤라토 하나 사주고 광장을 배회했다.


기차는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오후 2시 로마 떼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오래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도시 간 이동에 꼬박 하루가 걸렸는데, 이제 고속열차로 2시간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로마는 역 주변이 아닌 관광지에서 가까운 숙소로 잡았다. 로마가 마지막 여행지였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고, 공항은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역에서 도보로 20분 이상 걸어야 했다. 날은 더웠고 시위하는 거대한 인파를 만났다.

저번 주 토요일, 베른에서 시위하는 행렬을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서울처럼 로마와 베른도 토요일 시위가 많은 것 같다. 걸어 다니면서 시위는 모습이 신기했다.  장소에 모여 있기보다 행진을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우리 짐이 무겁지는 않지만, 돌바닥에서 캐리어를 끄는 것은 쉽지 않다. 남편이 캐리어를 끌고, 나는 구글맵을 보며 숙소를 찾아갔다.

이번 에어비앤비 숙소는 오래된 유럽식 아파트였다. 현관을 들어서면 거실 겸 침실이 있고, 문을 열면 부엌이 있다. 부엌에서 또 문을 열면 안방이 있다.

유럽 소설에서 안방은 부모님 침실이고, 밤에 부엌의 식탁을 치우면 주인공의 침실이 되고, 현관방은 오빠나 하숙생의 침실이 되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이 생소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소설 속 장면이 명확하게 그려져서 흥미로웠다.



우리는 유스호스텔, 에어비앤비, 호텔, 다시 에어비앤비 순서로 숙박을 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매번 세탁기가 우리나라 아기 세탁기만큼 작아 몇 번에 나눠서 세탁해야 했다. 그리고 유럽의 집들은 왜 창에 방충망이 없을까. 습하지 않아서 창만 열어두면 시원할 텐데, 어쩔 수 없이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켜야 했다.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핀초 언덕을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  트레비 분수 주변에 공포스러울 만큼 사람이 많았다. 동전을 던지기는커녕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분수 있다가는 사람에 밀려 에 빠질 거 같았다. 코로나 이후 유럽이 오버 투어리즘으로 심각하다고 들었다. 극성수기가 아니어서 지금까지는 적당히 사람이 많은 정도였는데, 로마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트레비 분수

로마는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다. 지저분하고 불친절하며 소매치기가 많아서 기대한 만큼 실망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로마가 참 좋았다. 원래 로마에서 5박을 하며 여유롭게 보내려고 했는데, 요즘 로마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고, 아이가 피렌체와 피사를 가고 싶어 해서 로마를 3박으로 줄였다. 애초에 로마는 여유롭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3박으로 줄여서 아쉬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풍경이었다.



스페인 계단

스페인 계단 앞도 사람이 많았다.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지 못하게 경찰들이 제지하고 있었는데, 만약 앉을 수 있었다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 사이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 같다. 핼러윈 사고 이후 이렇게 사람이 밀집된 광경을 보면 무섭다.



스페인 계단을 지나 도보 10분이면 핀초 언덕을 갈 수 있다. 핀초 언덕은 로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로 특히 일몰 때 인기가 많다.

보르게세 공원

예전에 같은 민박집 아이들과 석양을 보러 핀초 언덕을 찾아갔었는데, 찾지 못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보르게세 공원만 헤매다 돌아왔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장소는 그냥 공원 한가운데라 이번에도 전망대를 찾아 한참을 헤맸다.



남편이 포폴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찾았다. 가끔 쓸모가 있다. 핀초 언덕이 아닌 'Terrazza del Pincio'라고 검색해야 나오는 장소였다. 사진 몇 장 찍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피곤하고 감기 기운도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나만 아프다.


로마에는 한인마트가 많지만, 찾아가기 귀찮기도 하고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아 한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늘 먹던 대로 냄비밥에 삼겹살을 먹었다. 우리는 현지식을 선호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김치와 라면 국물이 그리웠다. 다음 여행에는 튜브형 고추장과 라면을 꼭 챙겨가기로 했다.



아이는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글썽였다. 이 여행도 이제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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