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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8. 2024

[11] 로마를 걷다

여행 열 번째 날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오늘은 로마 시내를 걸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에 다시 찾은 트레비 분수는 어제보다 덜 붐비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아이가 동전 던지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우리가 가진 동전은 스위스 프랑밖에 없었다. 아깝지만 스위스 동전 두 개를 트레비 분수에 기부했다.


트레비 분수에서 판테온으로 가는 길에 성당 하나가 눈에 띄어 잠시 들렀다. 바로크 양식의 예수회 성당인 산티냐치오 성당이었다. 환영적인 천장화가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돔은 실제 돔이 아니라 트릭아트이다.




판테온 입장권 현장 발권 줄이 길었다. 우리는 9시로 예약했기에 시간 맞춰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판테온 예약은 약 3주 전부터 가능하지만 시간당 입장하는 인원수가 많아서 예약이 힘들지 않다. 전날 저녁 로마에 도착하고 예약해도 여유 있었다.


어린 시절, 판테온 천장의 창이 뚫려 있지만 비가 와도 물이 새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너무 신기했다. 예전 로마 여행 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나는 그 신비로운 광경을 보기 위해 판테온으로 달려갔다.

판테온 입구 계단에서부터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부에는 대형 양동이가 여러 개 놓여 있고, 바닥은 물바다였다.



로마시대에는 문을 닫고 중앙 제단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면 상승기류가 생겨 비가 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제단도 없고 문이 열려 있어서 비가 오면 그대로 들어온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판은 인간의 얼굴에 뿔과 꼬리가 달려 있고, 온몸은 털로 둘러싸여 있다. 별 걸 다 가지고 있어서 판(Pan)으로 불리게 되었다. 판은 그리스어로 모든 것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호색한이기도 한 판은 공포(panic)의 유래이기도 하다. 판테온은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의 만신전이었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인지 한쪽에 예배 공간이 마련되어 오르간 연주자가 반주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만신전이 아니라 유일신을 섬기는 성당이 되었다.



판테온이 무료입장이었을 때는 다들 한번 둘러보고 나갔지만, 유료가 되니 꽤 오랜 시간 머물게 되었다.



판테온에서 예전 학교 교감 선생님과 닮은 분을 보았다. 가족과 함께 계셨는데, 혹시나 아닐 수도 있으니 망설이다가 인사를 하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 교감 선생님의 카톡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탈리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판테온에서 봤던 그분이 맞았다. 인사를 했었야 했는데 아쉽다. 낯선 공간에서의 만남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나보나 광장을 지나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보여서  들어갔다. 황금색 프레임 장식이 매우 화려했다. 엑스자 모양의 십자가 그림으로 보아 성 안드레아 성당인 것 같다.


천장화를 감상하기 위한 거울 테이블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평범한 성당도 이렇게 화려했다.





조국의 제단을 지나 캄피돌리오 언덕을 올라갔다. 아이는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생각보다 관련 유적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고 다. 성당을 주로 방문하다 보니 헬레니즘보다는 헤브라이즘을 많이 접한 것 같다. 그래서 미켈란젤로 광장 계단 끝에 있는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동상이 반가웠다. 이 디오스쿠로이 형제는 제우스의 아들로 '쌍둥이자리' 별이 된다. 그리스 신화보다 로마 신화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전쟁이 국가적 사업이던 로마 시대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준다는 이 형제가 사랑받았던 것 같다.

'마라톤'과 '아카데미' 두 단어가 이 쌍둥이 형제로부터 유래한다. 쌍둥이 장군은 부하 마라토스가 자결한 벌판을 '마라톤'이라고 부르게 했다. 이후 마라톤 벌판은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승리를 전해준 스토리로 유명해졌다. 쌍둥이 형제의 누이인 헬레네가 납치되었을 때 도와준 아카데모스의 고향을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곳에 플라톤이 학교를 세우면서 학교, 학원을 뜻하는 '아카데미'가 나왔다.


이 언덕에 서면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콜로세움 입장권은 별도로 판매하지 않으며, 콜로세움 통합권을 구매하면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을 모두 입장할 수 있다. 로마에서의 일정이 짧아 통합권을 구매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여기에서 포로 로마노를 보았다. 직접 방문했을 때도 좋았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더 웅장해 보였다.


'진실의 입'으로 이동했다. 나는 예전에 다녀온 적이 있고  손 넣고 사진 찍는 것이 전부라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아이가 가고 싶어 했다. 관광객들이 빠르게 사진 찍고 이동할 수 있도록 직원이 관리하고 있어서 줄은 길었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은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다. 밸런타인데이로 유명한 성 밸런타인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양식으로 내부 목조 천장이 남아 있다. 



맞은편에는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다.




콜로세움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아치형의 로마 수로교가 보이고 곧 도착이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아이가 로마에서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것이 콜로세움이었는데, 어제 트레비분수와 스페인 광장에 이어 관광객이 너무 많고 정신없었다. 남편도 아이도 콜로세움의 장엄한 모습을 기대했지만, 상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콜로세움 옆 작은 광장에서 검투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로마 시대 콜로세움을 재현한 것으로 보였다.


걷다가 식당이 보이면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콜로세움까지 오는 내내 보이지 않았다. 날은 덥고 허기져서 힘들었다.



식당 찾기를 포기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식당을 발견했다.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테라스 자리가 인기라고 하는데, 테라스 만석이었고, 날이 너무 더워서 우리는 내부로 들어갔다.

식당 화장실 앞 세면대 수도꼭지는 바닥에 있었다. 한 백인 할아버지가 손에 비누를 묻힌 채 물이 나오지 않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탭을 밟으라고 알려주었다. 그 할아버지가 고마워하면서 "코리안?"이라고 물었다. 맞다고 하니 한국어로 "땡큐"가 무엇인지 물었다. 알려주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가셨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둘 다 아니면 어느 나라냐고 묻고,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이냐, 남한이냐고 물어본다. 처음부터 한국인이냐고 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국말로 감사 인사까지 해 주시다니. 감동이었다.



콜로세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바르베리니 역까지 이동했다. 바르베리니 광장에는 베르니니의 조각이 있는 분수대가 있다. 하루종일 걸어서 꽤 피곤하다.

내일은 바티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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