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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9. 2024

[12] 바티칸 미술관은 가이드투어가 필수일까?

여행 열한 번째 날

2023년 10월 9일 월요일


가이드 투어 vs 입장권 구입


바티칸 박물관 방문객 대부분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다. 미술이나 역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면 투어는 필수라고들 한다. 나도 처음 바티칸에 갔을 때 주변의 권유로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었다. 유명 여행사의 인기 가이드였고 일반인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설명은 부족했고, 흥미 위주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미술 교사이고 역사를 좋아한다. 바티칸을 또 간다면 투어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아들을 위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까 고민했다. 바티칸 박물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가이드 안내 없이 길 찾기가 쉽지 않고,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가이드 설명을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아이가 단체 투어를 따라다니기 힘들 것 같다며 반대했다. 투어 가격이 저렴하면 신청했겠지만, 세 식구 포함 투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굳이 이 비용을 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투어는 하지 않기로 했다.


투어를 하지 않고 방문하려면 티켓팅이 큰 난관이다. 현장 구매는 대기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예매에 성공해야 한다. 티켓 예매는 방문 날짜 60일 전 자정, 한국 시간으로 오전 7시에 시작된다. 다른 요일도 예약이 쉽지 않지만, 특히 토요일과 월요일은 접속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접속해도 이미 마감된 경우가 많다. 바티칸 박물관은 일요일이 휴관이기 때문에 토요일과 월요일에 관람객이 많아서인  다. 우리는 로마에 토요일에 도착하여 화요일에 떠나는 일정이기 때문에 바티칸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은 월요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예매에 실패했다.


예매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대안을 생각해 두었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은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 아침식사나 점심식사가 포함된 입장권이 괜찮아 보였다. 바티칸 박물관 식당은 비싸고 맛이 없는 것으로 악명 높지만 어차피 먹어야 하는 밥이고 딱히 다른 대안도 없다. 아침식사 포함 입장권은 일반 입장권보다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점심식사 포함 입장권을 구매했다. 이 입장권의 장점은 예약한 식사 시간만 지키면 되고, 박물관 입장 시간은 자유롭다.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의 일반적인 투어는 회화관, 조각관, 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 시스티나 성당, 베드로 대성당 순으로 진행된다.


나는 9시 오픈시간 입장과 동시에 빠르게 이동하여 가장 인기 있는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성당에 투어팀 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상태에서 여유 있게 감상하고 싶었다. 이후 점심 식사를 하고 회화관부터 천천히 한번 더 둘러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9시부터 이미 많은 투어팀들이 이동하고 있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단체에 쓸려 다니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성당은 출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라파엘로의 방에 도착했지만, 이미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에 오면 꼭 찍는다는 인증사진도 겨우 찍었다.


다음은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동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작품 복원에 일본 NHK가 참여했고, 그 대가로 저작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했을 때, 사진 촬영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이 은근슬쩍 사진 찍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자기네들의 작품 저작권을 동양 나라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복원은 그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그동안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의 소묘력은 뛰어나지만, 색채 감각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복원된 작품은 고채도의 화사한 색감으로 그동안의 평가를 뒤집었다. 이러한 내용을 공부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1990년대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가 복원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다니.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는 역시나 명성대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맛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생각보다는 먹을 만했다.

가격은 고급식당인데 일회용 접시에 담아 준다. 코카콜라 종이컵을 줘서 콜라나 커피 마시라는 줄 았는데 그냥 물컵 용도였다


식사 후 회화관부터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요즘은 투어가 회화관을 가지 않는 것인지, 투어팀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투어를 하지 않는 대신,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아이에게 읽어주고, 박물관 사이트에서 주요한 작품도 보여주었다. 아이는 책에서 본 작품이 나올 때마다 무척 신나 했다. 열심히 작품 사진을 찍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지식을 종알종알 설명하기도 했다.

라오콘 상의 발견은 이 바티칸 박물관의 시작이 되었다. 1506년, 한 농부가 에스퀼린 언덕에서 라오콘 상을 발견했다. 라오콘 상의 오른쪽 팔은 발견 당시 부러지고 없었는데, 사람들은 팔이 쭉 뻗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라오콘 어깨와 가슴의 근육으로 미루어보아 팔이 굽혀져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19세기말, 라오콘 상의 오른쪽 팔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미켈란젤로의 주장이 맞았음이 밝혀졌다.


아이는 이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는지, 신나게 설명했다. 사람이 아프면 팔을 굽히지 않냐며, 팔을 쭉 뻗으면 신나서 고고싱하는 자세라고 주장했다. 아이다운 귀여운 생각이다.

아폴로와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복원 중이라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특히 좋아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크게 낙담다. 추가로 뭔가가 더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라오콘처럼 무슨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오전에도 사람이 많아서 놀랐는데, 오후에는 더 많았다.

다시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으로 갔다. 아이는 시스티나 성당을 가장 좋아했다. 예전 투어 때는 중앙에 서서 급히 보고 가이드를 쫓아 나갔었는데, 이번에는 벽을 따라 놓인 의자에 앉아서 오래오래 감상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장면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이야기하, 다른 화가들이 그린 벽화 살펴볼 여유가 있었다. 아이는 라파엘로의 스승 그림을 찾아내고 신나 했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이탈리아 여행에서 바티칸 박물관이 가장 좋았다고 다.


베드로 대성당


시스티나 성당 출구로 나가면 바로 베드로성당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투어팀만 그 지름길로 갈 수 있고, 자유 관람객들은 다시 박물관 입구로 나가 바티칸 성벽을 돌아서 베드로 성당을 가야 한다. 동선이 꽤 길어지고 베드로 성당 입장줄을 다시 서야 하지만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 아래 바티칸 광장을 몇 바퀴 둘러선 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 정도는 기다릴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베드로 성당 마감 시간 내에 입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에 베드로 성당을 보았기 때문에 괜찮지만, 남편과 아이에게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이렇게 여행 마지막날에 치명적인 결함을 남겼다.

아이는 애써 실망한 마음을 감추며 시스티나 성당이 너무 좋았고 바티칸 박물관을 잘 보았으니 괜찮다며 의연해했다. 하지만, 지금껏 베드로 성당을 못 본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도 너는 이제 겨우 여섯 살이잖니, 앞으로 갈 일이 많을 거야.

베드로 성당 내부에는 못 들어갔지만 최근 외벽에 설치되었다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보려고 했는데, 그날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외부 입장도 통제되어 보지 못했다. 최근 조선말 천주교 박해 내용을 다룬 소설 '사랑과 혁명'을 읽어서, 더 아쉽다. 내 생애에 로마를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베드로 대성당부터 보아야겠다.


숙소로 돌아와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더럽고 낡은 골목도 떠나려니 아쉽다. 로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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