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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Mar 24. 2024

폼페이의 추억, 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

여행 장소를 정할 때 나는 내키지 않는 곳인데 주변에서 추천하는 경우가 있고, 나는 정말 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말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추천과 상관없이 내 마음이 내키는 곳이 가장 좋았다. 가고 싶은 곳이 내 취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폼페이였다.

2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에서 폼페이를 가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만류했다. 정작 다녀온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건너 들은 이야기로 볼 거 없다, 그냥 '폐허'라고 했다.


로마에 도착한 후에도 폼페이에 대한 악평은 계속되었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떼르미니 역에서 출발하는 폼페이 투어를 신청했다. 그리고 투어 당일,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 폼페이 투어를 신청한 사람이 나 한 명이라 취소되었다고 한다. 나에게 연락했다고 하는데 당시는 핸드폰 없이 여행하는 시절이라 나는 그 문자를 받지 못했다.

 

떼르미니역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폼페이 여행을 준비해서 나섰으니 혼자 가기로 했다. 낡은 기차를 타고 폼페이로 출발했다. 기차 안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폼페이 가지 말라고, 볼 거 없다, 우리랑 같이 나폴리를 가자고 했다. 폼페이를 가는 기차 안에서까지 만류하는 그곳, 폼페이를 가는 길은 험난했다.

2005년 폼페이역

폼페이에 도착해서 입구에서 '폼페이의 미술과 역사'라는 책 한 권을 샀다. 폼페이 구석구석 사진과 설명이 실린 책으로 한국어도 있었다. 오늘날 같으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겠지.

책 한 권을 들고 혼자 폼페이를 걸었다.

2005년 폼페이 , 대극장,  '폼페이의 미술과 역사' 책을 들고.


2000년 전 도시를 걷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 수로 시설, 선거 광고판, 빵집의 화덕, 프레스코 벽화...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폼페이가 가장 좋았다.

2005년 폼페이, Via Consolare 분기점



2005년 폼페이, 테르모폴리움의 판매대.

폼페이 여행 필수품은 우산이라는 말을 듣고 우산을 가져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우산은 매우 유용했다. 날씨가 갑자기 변해서 비가 쏟아졌는데 폐허가 된 도시에서 비를 피할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맑은 날씨에 우산을 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서양인들의 눈빛이 금세 부러움으로 변했다. 폼페이 여행의 필수품은 우산이다. 그곳은 햇빛을 피할 곳도 비를 피할 곳도 없다.

2005년 폼페이. 포럼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 진귀한 폼페이의 유물이 한국에 오다!

2000년 전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의 귀한 유물이 한국에 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2024년 1월 13일부터 5월 6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 내 미술관 ALT.1(알트원)에서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가 개최됩니다.

세계적 박물관 중 하나인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한 조각상, 프레스코화, 장신구 등 유물 127점이 관람객을 찾아갑니다. 최첨단 실감 미디어 콘텐츠도 더해져 화산 폭발 당시 참혹한 풍경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폼페이 유물은 고대 로마의 찬란했던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합니다.


폼페이 유물전 초대권이 생겼다. 나는 오래전 폼페이를 다녀왔고, 폼페이는 유물보다 도시 자체가 유물이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가 작년 유럽여행 때 폼페이를 가고 싶어 했지만 일정이 빠듯해서 가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는 이번 전시를 엄청 기대하고 설레어했다. 그때 내가 산 폼페이 책도 열심히 봤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아이 개학 전 2월 평일에 다녀왔다.

2005년 폼페이 여행에서 산 책, '폼페이의 미술과 역사'

후기를 찾아보았을 때 관람 시간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사실 공간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장장 세 시간을 있었다.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새로 지은 더현대 내부가 멋있던데 백화점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024년. 폼페이 유물전
2005년 폼페이, 베티의 집

우리는 오픈 시간 10시 30분에 맞추어 도착했다. 평일 아침인데도 티켓팅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온라인 예매를 해도 실물 티켓으로 교환해야 하고 현장 발권 줄과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니라 백화점 내 전시관이라 그런지 운영이 허술했다. 다행히 우린 실물 티켓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사물함에 코트와 가방을 넣고 가볍게 전시장에 입장했다. 일단 전시장 끝까지 한번 둘러보았다. 평일 오전, 가장 사람이 없는 시간이었다. 전시품은 사진 촬영이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들은 이때 빠르게 전시관을 돌며 사진 촬영 가능한 유물 사진을 찍었다. 나도 이때 찍었어야 했다. 11시 이후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아들이 찍은 사진

평일은 도슨트 투어가 세 번 있고, 우린 11시 설명을 들었다.


그날의 도슨트는 젊고 아름답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한 시간 넘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특히 아이가 열심히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역시, 바티칸 박물관 갔을 때 가이드 투어를 해야 했었나 싶다. 퇴직 하고 싶은 일 중에 도슨트도 있었는데, AI에도 밀리겠지만 늙고 무기력한 도슨트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내가 가졌던 의문처럼 폼페이 도시 자체를 보여 줄 수 없으니 다른 방향으로 주제를 설정해야 했을 것이다. 국립 나폴리 박물관 전시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유물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2005년, 폼페이, 조가비 안의 비너스 프로스코화
2024년. 폼페이 유물전


2005년 폼페이에서. 파우누스의 집 중앙홀.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설명패널


도슨트 설명 중 유리 주전자를 신라시대 황남대총 유리잔과 연결해서 당시 우리나라와 로마와의 교류에 대해 말씀하셨다. 국립중앙박물관 봉수 유리병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비교해 보니 손잡이 모양도 비슷한 것 같다.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유리잔
봉수 유리병, 황남대총 남분 출토,  신라, 높이 2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전시 이동 공간 바닥을 폼페이처럼 연출했다.
2005년 폼페이


폼페이에서 도시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폼페이 시민 석고 캐스팅이었다.

2005년 폼페이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설명 패널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아들이 찍은 사진
2024년 폼페이 유물전, 사진 찍고 있는 아들

폼페이 여행에서 유물이나 벽화가 나폴리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어서 정작 폼페이에는 유물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었다. 폼페이와 나폴리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여행 코스가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때 궁금했던 유물을 19년 뒤에 아들과 함께 이번 폼페이 유물전에서 보았다.


폼페이 유물전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던데 내 경우는 아들이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만족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폼페이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폼페이 유물전- 그대 그곳에 있었다. 부제처럼 2005년의 나도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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