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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Jul 04. 2024

눈물꽃소년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눈물꽃소년 (박노해)

민트색 하드보드 표지가 마음에 든다.

목판에 새긴 듯한 글씨체도 좋다.

'꽃'을 향해 글씨가 상승하며 꽃 주변에 획이 모여있어 '꽃' 글자에 시선이 집중된다. 획은 흩날리는 꽃잎 같기도 하고 뿌려지는 눈물 같기도 하다.

제목이 상단이 아닌 중앙에 배치하여 위 아래 두 개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위는 중절모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남성의 뒷모습, 아래는 여성과 아이의 뒷모습이 있다. 떠나가는 남성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여성과 아이는 어머니와 저자인 나. 같다.

가운데 놓인 글자로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와 내가 있는 공간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저 멀리 아버지가 떠나가고 남겨진 어머니와 나의 슬픔은 눈물이다. 슬픔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감으로 그 눈물은 꽃잎으로 승화된다.


처음에는 성장 소설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은 박노해의 자전수필이다.


삶의 지혜가 느껴지는 할머니와 어머니, 주변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 훌륭하다. 저자가 옳은 일을 위해 강직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 원동력은 어린 시절 그를 만든 주변 어른들인 것 같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p 12)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두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 (p 16)


우리 동네 바다에서는 거북이가 빠른디 왜 토끼 노는 산에서 시합을 한다요? (p 132)


힘 빼! 얼른 놓아 버려! (p 147)


사람이 영물이다. 니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속물이 되지 말그라. (p 153)


나는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잘 받아써주는 사람이 될라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맘이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의 입이 되고 글이 될라요. (p 166)


수백 권의 책을 다 읽고 더는 읽을 책이 없어서 가장 감명 깊었던 몇 권을 다시 써내 소처럼 되새김질했다. (p 169)


상처 난 아이의 미칠 듯한 허기의 독서에, 작은 석상 같은 부동의 독서에, 가만가만 등불을 놓아두고 말없이 기다려준 선생님. 저녁도 거르고 퇴근도 늦게 해 홀로 밤길을 걸어가면서도 단 한 명의 책 읽는 아이를 조용히 지켜주던 선생님. (p 172)


사람은 말이다, 뜻이 먼저다. 꿈을 딱 정해놓으믄 뜻이 작아서 분다. 큰 뜻을 먼저 세워야제. 그라고 성실하고 꾸준하면 되는 거제. (p 217)


울 엄니와 나는 '좋은 부모'도 '좋은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말없이 곁을 지키며 함께했고 서로를 향해 눈물의 기도를 바쳐줄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좋은 자식이 되어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p 225)


고백하자면, 광선이랑 짝꿍을 한 건 좋아서가 아니었다. 다들 냄새나는 옷을 입고 맨날 꼴찌만 하는 광선이랑 짝꿍 하기 싫어했다. 나도 예쁜 여자애랑 짝꿍 하고 싶었고 공부 잘하고 빛이 나는 아이랑 짝꿍 하고 싶었다.

아무도 앉고 싶어 하지 않는 광선이랑 짝꿍을 한 것은 솔직히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였다. 맨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광선이를 볼 때면 내내 마음이 까시로왔다.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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