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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ul 03. 2021

방 안에서 금강산 유람하기

몬스테라 관찰일지 - 첫 번째


  J는 생일 선물로 무엇을 주면 좋을지 물어봤다. 필요한 것을 주고 싶다고 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화분을 하나 더 사달라고 했다. 근래에 눈이 많이 가던 몬스테라 화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J는 지난 생일에 스투키 화분을 보내줬다. 그때는 무엇이 필요한 지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화분을 보냈다. 생각지 못했던 선물에 반가우면서도 먹여 살릴 식구가 늘었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다행히 스투키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물을 줘도 충분하다고 했다. 오히려 관심을 주지 않아야 잘 자란다고도 했다.

 다행히 스투키는 금세 자라 분갈이까지 해줘야 했다. 그저 물을 더디 주었을 뿐이었는데, 방 안에 햇빛이 잘 든 덕이었다. 새싹이 많이 올라 나와서 하나였던 화분을 네 개로 늘려야 했다. 늘어난 화분의 개수만큼 마음이 든든해졌다. 숨겨진 재능을 이제야 발견한 것일지 모른다고, 사무실을 떠나 드넓은 대지로 나가야 하는 운명의 손짓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터무니없다고 웃으면서도, 예언 같은 직감이기를.)


 스투키 분갈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인터넷에 찾아보다가 알게 된 식물이 몬스테라였다. 실내에서 키우기 쉽다는데도, 쉬워 보이지 않은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다. 수경재배도 가능하다기에 화분에서 기르다가 새순이 나면 투명한 화병에 꽂아둬도 예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봉래초라고도 불리는 식물이 집 안에 있으면 좁은 자취방도 금강산이 될 것이고, 한 번쯤은 금강산에서도 살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으로 배송이 된 화분은 내가 알던 몬스테라가 아니었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신선들이 들고 다니는 부채 같은 이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멋스럽게 찢어져 있지도 구멍이 숭숭 나있지도 않은 이파리였다. 찾아보니 햇빛을 많이 받고 시간이 지나야 구멍 뚫린 새 이파리가 나온다고 했다. 금강산 신선놀음이 한 번에 이뤄지진 않을 모양이었다. (사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된다면 신선놀음을 굳이 계획할 필요도 없겠지.)


 어떤 사람에게 화분 가꾸는 일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한 줌의 숨 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죽음 같은 하루를 끝내고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경건한 의식일 수도 있다. 내게는 몬스테라를 키우는 일이 작은 금강산을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신선이 되기 위한 준비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몬스테라의 생장 기록은 한 회사원의 성장일기로도 읽힐 수 있겠다.
물론 금강산을 유람하는 신선의 이야기로 끝이 날지는 알 수 없다.
화분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배송 온 몬스테라를 방 안 구석 책장 위, 라라랜드와 앙리 마티스 사이에 올려 두었다.
몬스테라 :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상록 덩굴식물. 봉래초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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