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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ul 03. 2021

새 이파리가 돋아나는 일

몬스테라 관찰일지 - 두 번째


 몬스테라에서 새 이파리가 나왔다. 아직 잎이라기엔 터무니없이 작게, 고작 삐죽하고 튀어나온 게 다였다. 화분이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생긴 변화여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원래 있던 줄기를 비집고 새 이파리가 빼꼼 튀어나오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식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증거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는 순간이 그럴지도 모른다.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면서, 동시에 다시는 먹고사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 같은.


 소위 문송한 친구들 모두 취업에 유리하다는 상경계열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면서도 입사 지원서를 수십 여 개씩 제출해야 하는 시대였다. 지원 자격이 되는 거의 모든 회사에 지원서를 냈는데, 각각의 채용 전형은 치열한 실전이면서 동시에 다른 회사에 합격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무엇이 연습이고 어떤 게 실전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한 군데라도 뽑아주는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원한 수십 여 개의 회사 중 열 군데 정도에서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고, 인적성 시험을 비롯한 각종 전형을 통과해 최종 면접에 오라는 회사는 서너 개 정도였다. 겨우 한 두 개 정도의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면 합격한 회사의 성장성과 복리후생 수준 등을 고려해 입사할 회사를 결정했다. 물론 신입사원 연수 중에 더 괜찮다는 회사의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옮겨가는 능력자들도 있었다.


 취준 과정을 일 년 만에 끝내는 경우는 드물어서 대개 대학교 졸업을 1년 이상 유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대학교를 허투루 다닌 것은 아니었는데, 대부분 4.5점 만점에 4점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할 만큼 매 학기 열심이었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로 1년 정도의 외국 경험을 쌓고, 방학이면 기업에서 주최하는 각종 공모전이나 서포터스 활동에도 참여했다. 자격증 따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 모든 일은 입사 지원서에 뭐라도 한 줄 더 추가하기 위함이었다.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자라지 않는 화분은 결국에 죽는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이 아무리 좋더라도, 뿌리를 뻗고 새잎을 내어 생장하지 않으면 속에서부터 썩는다고 한다. 사실 몬스테라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찢어 새 잎을 냈는지 모른다.

생장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존을 위해 자라야 하는 생명의 비애가 남 일 같지 않았다.
화분이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새 이파리가 삐죽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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