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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ul 04. 2021

수습(收拾)하는 수습(修習)

몬스테라 관찰일지 - 세 번째


 새 이파리가 나온 몬스테라는 정말 빠르게 자랐다. 매일 바뀐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일 정도였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어놓고 비교해보니 달라진 모습이 더욱 확연했다. 말려있던 이파리가 조금씩 펴지면서 그럴듯한 모양을 갖춰나갔다. 줄기도 길게 자라더니 이파리가 활짝 펼쳐졌을 때엔 가장 기다란 줄기가 되었다. 새로 나온 이파리는 아직 색깔이 옅었다. 연녹색의 이파리가 말갛게 반짝여서 누가 봐도 새로 나온 이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몬스테라의 성장 속도는 놀라우면서도 두려웠다. 매일 이렇게 자라면 일주일마다 분갈이를 해야 할 수도, 좁은 내 자취방을 어느새 뒤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에 몬스테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몬스테라 집에 내가 얹혀 지내는 꼴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잠잠하게 응축된 에너지는 한 번 폭발하는 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법이었다.


 어제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날마다 보내던 취준생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 그랬다. 신입사원으로 처음 입사를 하는 날부터 매일 새로운 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2주 간의 기업 그룹 연수와 2주 간의 사내 연수, 그리고 현업팀 배치와 OJT가 이어졌다. 2주 간의 그룹 연수는 양평의 한 연수원에서 이뤄졌는데, 함께 입사한 그룹 내의 모든 신입 사원들이 합숙을 하며 교육을 받았다. 그룹의 소속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하거나, 그룹의 문화를 체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몇몇 강사들은 다른 기업을 '폰팔이'나 '껌팔이' 등으로 비하하기도 했는데, 그럼으로써 충성스럽게 정신이 무장된 신입사원을 키워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이 기억하는 것은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서 동기들과 소소하게 가졌던 술자리 정도였다.


 사내에서 이뤄진 연수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교육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각 현업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을 듣기도 하고 회사의 사업 구조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2주 간의 연수 기간 중 이뤄지는 평가를 통해 현업팀으로 배치될 예정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치열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뎠음을 실감했다. 어떤 팀에 배치받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면서 애썼는데, 어느 팀에 가더라도 똑같은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결국, 2주 간의 사내 연수에서도 얻을 것은 함께 직장생활을 견뎌낼 몇몇의 동기들 뿐이라 할 수 있었다.


 배치받은 현업팀에서는 OJT를 받으면서 실무를 바로 해내야 했다. '마시면서 배우는 술 게임'도 아니면서, 하다 보면 익혀지는 것이 실무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기초 자료 작성부터 갑작스레 처리해야 하는 업무까지 하나둘씩 배워야 했다. 날마다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도, 한 번 넘겨받은 일은 혼자 해낼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날 즈음에야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낯설지 않다는 말의 의미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디든 일 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정체하던 시기가 끝나자마자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순식간에 변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정체하고 있는 순간이 사실은 준비하는 시간임을 알게 되는지 모른다.

빠르게 변해야 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준비하는 시간을 더 여유 있고 풍성하게 누리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한 장씩 찍은 사진이 몬스테라 성장의 증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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