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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ul 05. 2021

뭐 재미있는 거 없니? (1)

몬스테라 관찰일지 - 네 번째


뭐 재미있는 거 없니?
회사는 노답이야.

 선배의 말이었다. 처음엔 우스갯소리로 받아넘겼던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나서야, 농담이 아니라 일종의 하소연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를 살뜰히 챙길 뿐 아니라, 업무도 척척 해내는 선배의 조언이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대기업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이제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매일이 날마다 어려운 도전 같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마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크고 높은 벽처럼 느껴지던 업무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낮은 허들 정도가 된다(어렵다기보다는 걸리적거리고 너~무 귀찮은 거지). 나중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감이 오는데, '아! 내가 직장인이 되어 버렸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신입사원의 신선함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신입사원은 신선하다는 말 자체가 거짓인 명제다. 애초에 회사에서 원하는 사고방식으로 답변하는 사람만이 취업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신선함은 회사에 없는 단어라고도 할 수 있다.


 직장인이 되어버렸다는 증거는 대화 주제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업무 숙련도 같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이전에는 취업 고민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로 이야기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아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름대로 꽤나 철학적인 주제라 할 수 있겠다. 하다 못해 전날에 어떤 영화나 책을 봤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나누다 보면 상대방을 보다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젯밤 어떤 문장이 네 영혼을 흔들어 놓았니?' 하는 오글거리는 말 없이도, 사람 자체가 대화 주제였던 것이다.


 회사원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된다. 부동산, 주식, 자동차, 명품, 돈 그리고 이제는 코인까지. 자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클수록 강력한 자본주의의 전사가 되는 법이었다. 정신없이 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나 홀로 벼락 거지가 되어 있었으므로 노력에는 끝이 없었다.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지 질문할 여유도 없었다. 그새 아파트값은 오르고,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자산을 늘릴 수 있는지, 혹시 나만 모르는 것이 있는지 알아야 했다(무엇보다 먹고사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다).

 물론, '저 부장 새퀴는 내 손으로 주겨버리게써!', '이거 때려치우고, 뭘로 먹고살지?' 하는 형이상학적인 대화를 하기도 한다.


 청약도 넣고 주식도 사고, 명품 매장도 기웃거리면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카카오가 엄청 올랐더라.' 'HMM 다니면서, 왜 흠슬라를 안 샀니?' '누구는 신도시에 청약이 됐대!'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 뭐 볼지 고르기만 하다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이었다. 돈 버는 이야기를 한다고 돈이 생기진 않았지만, 돈 버는 이야기를 안 하고선 딱히 대화거리도 없었다. 먹고사는 이야기만큼 모두에게 중요한 주제는 없었으므로.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지나갔다. 그러므로 어제 했던 이야기는 오늘도 내일도 반복될 것이었다. 먹고사는 일은 끝이 없어서 돈 버는 이야기도 그치지 않았다. 매번 돌고 도는 이야기는 현실을 바꿀 수 없어서 공허했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데, 문득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는 어떨까 궁금했다.

"요즘 뭐 재밌는 거 없니?"
새로 나온 이파리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새잎 색깔이 금세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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