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람 Jul 12. 2021

뭐 재미있는 거 없니? (2)

몬스테라 관찰일지 - 다섯 번째


회사가 재미있으면 돈을 내고 다녀야지.

 회사는 원래 재미가 없단다. 즐거움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문제란다. 자아실현이나 성취감을 회사에 기대할수록 더 실망한다고 했다. 삶의 의미나 보람 같은 것은 퇴근한 이후에 찾으라 했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여유 없이 긴 하루를 보내고도 무의미한 인생일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지만,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삶이 풍성해진다고 배웠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달라서, 회사일에 가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에 보람을 느끼거나 풍요한 삶을 누리는 것은 큰 회사일수록 더 불가능해 보였다. 사업의 범위가 넓고, 조직이 클수록 업무가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굳이 산업혁명이나 포디즘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각자 맡은 일을 공장의 기계처럼 반복하면서, 일의 기쁨을 얻기란 무리였다.

 컨베이어 벨트 하나 없는 해운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객의 화물을 선박으로 실어주면서도, 전 과정을 주관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컨테이너 화물 운송에 종사했지만 배에 실린 컨테이너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물건들은 한낱 종이 위에 적힌 숫자에 불과했고, 각자가 맡은 부분의 숫자 이외에는 관심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임원급의 일부만이 사업 전체를 아우르며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종이에 적힌 글자만 이해할 뿐이라서, 본인들이 하는 일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순 없었다. 애초에 만질 수 없는 일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고서였다. 상세한 보고서에는 요약본을 요청했고, 요약된 보고서에는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같은 내용의 보고서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지시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각각 필요하다 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보고서 만드는 일은 직원들의 몫이어서, '보고서를 만드려고 사업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무용했다.


 긴 시간을 사무실에 있으면서, 생각 땅굴을 판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언젠가 퇴사의 변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이직을 하더라도 결국 회사는 회사일 것이었다. 먹고사는 일에 끝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땅굴에도 끝이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만큼 큰 절망은 없는 법이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직접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해야 노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현대인들은 눈앞에 나사만 조이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이었다.

 친구 W는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서, 본인의 삶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모던 타임스' 속에 있더라도, 바깥에서는 '시티 라이트'의 주인공일 수 있다는 것이다(둘 다 가난한 건 똑같지만). 그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계속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고 있었다.


 회사에서 의미를 찾으려다, 삶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순 없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답답할수록,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했다. '인생 평균 점수 올리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퇴근한 이후에 진짜 삶을 찾으라는 말 역시 같은 의미일 것이다. 무엇을 해야 회사에서 얻을 수 없는,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을 찾아야만 회사에 있는 자신을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아무 변화 없이, 이파리의 색깔만 진해지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뭐 재미있는 거 없니?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