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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Aug 01. 2021

2021 성냥팔이 소녀

공유저작물창작 공모전-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 다시 쓰기


 소녀는 성냥 공장의 직원이었다. 공장 사장의 딸이니, 엄밀히 말해 직원이라 할 수는 없었다. 계속 성냥 산업이 흥했다면 성냥 공장의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성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성냥 공장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소녀 아버지의 성냥 공장도 위기를 맞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성냥 공장이 어려워지자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사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보다는, 사업의 위기를 인생의 위기로 받아들이며 함께 스러져갔다. 공장을 경영하는 일은 오롯이 소녀의 몫이 되었다. 아직 어린 소녀에게 아버지가 하던 일을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소녀는 성냥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공장 가동을 멈추고, 창고에 쌓인 재고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무턱대고 길거리로 나가서 외쳤다.

 "성냥 사세요!"

 작았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반복해서 외칠수록 성냥 사라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무엇이든 처음이라 어색한 건 본인 뿐이어서,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일수록 자연스러워지는 법이었다.

 "성냥 사세요!!!"

 하지만 목소리가 크다고 성냥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하느라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성냥을 파는 소녀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작은 불이라도 피워서 몸을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을 피우기 위해 성냥을 긋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 할머니와의 추억이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가 더운 여름날 원두막에서 수박을 썰어 주던 날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박을 먹고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잠든 소녀 자신이 보였다. 할머니의 부채 바람이 닿을 때마다 소녀는 꿈속에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소녀에게 남아있는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


 성냥불이 꺼지자 소녀는 다시 차가운 길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전만큼 길거리가 춥지는 않았다. 추억은 차가운 몸도 따뜻하게 녹이는 듯했다. 소녀는 자신이 파는 성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억을 소환하는 성냥이었던 것이다.


 소녀는 온라인몰에서 성냥을 팔기 시작했다. 자신이 경험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며, '추억을 소환하는 성냥'이라 홍보했다. 추억 여행에 성공한 구매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SNS에 올리면서 '성냥 챌린지'까지 이어졌다. 일상에 지쳐있던 사람들일수록 성냥의 효과는 더욱 강력했다.

"우리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봤어요.(HANS123)"
"처음 봤던 바다가 떠올랐어요.(크리스티안92)"
"태어나 처음 먹었던 아이스크림 맛이 기억나요.(andersen0411)"

 소소한 일상의 기억부터 그리운 사람과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린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성냥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멈췄던 공장은 다시 가동되었고, 어느덧 소녀는 성공한 사업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러자 소녀의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다. 자신의 못난 과거를 용서해달라고 딸에게 빌었다.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게 다시 열심히 살겠다고도 했다. 서서히 무너지는 삶은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갑자기 회복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소녀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워하는 마음에는 끝이 없어서, 아버지를 미워할수록 스스로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업은 번창했고, 가정은 평화로웠다. 소녀는 이제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어 보였다.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성냥은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소녀는 성냥을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사업이 성공하고 삶이 윤택해지자, 추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일상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지난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한 것이라 생각했다. 소녀에게는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것보다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많았다.


 어려움 없이 보내는 시간은 힘겨웠던 날보다 빠르게 흘렀다. 주위에 소녀보다 성공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성공한 소녀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소녀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이 쓸쓸했는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맛있는 음식을 찾고 비싼 물건을 사모았다. 소녀는 점점 부유해졌지만, 그만큼 더 공허했다. 경제적인 성공과 삶의 행복이 항상 이어져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녀는 텅 빈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멍하니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성냥갑이 침대 머리맡에 있었다. 힘겨운 하루를 보내던 시절, 잠들기 전에 지난 추억을 떠올릴 때 쓰던 성냥이었다. 소녀는 무감각해진 손을 뻗어 성냥을 그었다. 하지만 아무런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떠올리던 할머니도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날을 추억하지 않고 매일을 흘려보내다 보니 추억마저 흘러가버린 것이었다. 사라진 추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놀랐다. 다시 성냥을 그었다. 역시나 아무런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는 추억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까맣게 타버린 성냥개비만 수북하게 쌓이고 있었다. 소녀는 애꿎은 성냥만 계속해서 그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소녀의 이야기가 짧게 실려있었다.

성냥 공장 대표, 주검으로 발견.
방 안에서 창문 닫은 채, 과도한 성냥 사용으로 질식한 것으로 보여.
성공한 젊은 사업가는 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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