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 반쯤, 오늘도 어김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곤한 잠에서 반갑지 않은 소리에 잠이 깨면 기분이 조금 좋지 않다.
'아~ 엄마! 나 더 자고 싶어어어어.'라고 해도 엄마는 멈출 생각도 안 하시고,
되려 '누가 못 자게 했어? 더 자!' 하며 내 속을 뒤집는다.(내가 누구 때문에 잠이 깬 건데요...!)
같은 방을 쓰는 막내딸 좀 봐주시지 싶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아휴' 한숨 쉬고 돌아누워 다시 잠에 든다.
옷장 정리는 엄마의 취미생활이다. 그것도 여섯 시 반에 하는.
때로는 찬장, 때로는 냉장고, 그중에 거의 대부분은 옷장을 뒤집는다.(내 속을 뒤집듯.)
오늘은 뭘 입을지 고르시느라 그런 건지 정리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미 가지런한 옷가지를
괜히 꺼내보고는 다시 고이 접어 넣으신다.
언니는 만약에 엄마가 치매에 걸리면 매일같이 옷장만 열심히 정리하는 착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될 거라며 웃었다.
엄마의 또 다른 취미는 바느질이다. 엄마가 뭐 하나 보면 십중팔구는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
엄마가 워낙 옷을 좋아하시니 딸들은, 특히 큰언니는 계절마다 엄마 옷을 자주 사드린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옷, 비싼 옷을 사드려도 엄마 마음에 맞게 좋은 말로 리폼을 해서 입으신다.
어쩔 땐 '엄마, 이 옷은 진짜 예쁘니까 고쳐 입지 말고 그냥 입어!'라고 부탁을 할 정도다.
'이 옷은 팔이 좀 길다.'면서 소매 끝을 안으로 넣어 바느질을 하시는 건 기본이고,
'바지 밑 위가 짧다.'며 다른 천을 덧대어 허리 쪽을 한 단 만들어 입기도 하신다.
어느 날은 '카라 깃이 거슬거린다.'더니 멀쩡한 카라를 잘라내고 헨리넥 셔츠로 만들어 놓으셨다.
참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 그럴듯한 게 또 예뻐서,
그래도 우리 엄마 바느질 솜씨는 정말 좋다고 인정하게 될 때도 있긴 하다.
엄마 친구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맨날 옷을 고칠 게 있냐? 그래도 하루가 심~심한데, 바느질이라도 하면 시간은 잘 가겠다.'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할 게 tv 보는 것 밖에 없다.'는 말씀에 하긴 나도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데
엄마는 좋아하는 바느질을 하며 시간도 보내시고, 결과물에 성취감도 얻으실 테니
너무 좋은 취미생활을 하고 계시구나 싶었다.
옷 좀 이상하게 만들지 말라고 잔소리만 했는데...
엄마 곁에 살면서 한 걸음씩, 아니 반 걸음씩 엄마를 이해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쁜 옷, 새 옷, 그리고 엄마 마음에 들게 고쳐 놓은 옷을 좋아하는 여든두 살 할머니.
(혹시 아침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이 옷은 어떻게 고쳐 입지?' 고민하시는 건 아닐까...)
경로당 룩과 친구집 마실룩이 달라야 하는지 아침저녁으로 외출복을 두 번은 갈아입으시는
우리 동네 패션스타!
아마도 엄마는 아침세수하듯 옷장을 정리하며 어수선한 마음을 가다듬고,
바느질하며 옷을 수선하듯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 묵혀둔 상처를 꿰매고 계신 건 아닐지 모르겠다.
조석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젊은 날 일만 하느라 꾸미지 못한 세월을 나름대로 보상받고 계실지도.
그래, 엄마.
막내딸의 단잠이 깨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옷 정리를 해도,
비싼 옷을 고쳐 입겠다고 이상하게 리폼해서 우리를 속상하게 해도,
그래도...! 엄마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취미생활 많이 많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