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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로 굴러들어 온 아빠의 유산

by 두움큼

2년 전, 가만있어도 땀이 뻘뻘 나던 여름.

큰언니와 나는 제주도에서, 엄마의 애지중지 넷째 딸은 청주에서 늘 그랬듯 여름휴가를 보내자며 엄마 집으로 모였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낯선 분이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혹시 여기가 ○○○씨 댁이 맞나요?"

"네, 저희 아빤데요! 무슨 일이세요?"

우리 동네에 와서 물어 물어 찾아왔다면서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하시길래

'뭐지? 이 상황은?' 하며 속으로는 경계를 잔뜩 했지만 안으로 손님을 모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공인중개사셨고 아빠 명의의 땅을 매매하고 싶다고 찾아오셨던 것이었다.


"잠깐만요! 아빠 명의의 땅이요??"

엄마도, 언니도 기억 속에서 새까맣게 잊혀진,

곱씹어 생각해 보니 다른 동네에 있었던 게 맞은 아빠의 땅.

어떻게 우리가 휴가온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와주셨을까?

아빠가 땅의 존재를 기억하라고 친히 천사를 보내 주신 것 같다.

그 땅이 그 해 여름 우리의 곁으로 뜨겁게 굴러들어 와 주었다.


우리 자매들은 당장 그 땅을 어떻게 할 생각도, 어떤 욕심도 없이 생각지도 않은 일에 기뻐하며

'역시 우리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도 우리 딸들에게 이렇게 감동을 주신다.'며 아빠를 그리워했다.






부모님이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아랫동네 우리 땅.

노지에서 담배농사를 지으시다가 하우스에 백합농사를 하기까지 그곳은 곧 엄마아빠의 땀과 세월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유독 그 땅은 단순히 땅 그 이상의, 농사는 생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스물셋 막내딸도 아빠가 키워놓고 떠나신 백합을 버려둘 수 없어 과감하게 휴학하고 그 해 농사를 짓게 한 것처럼.


하우스를 지을 때 워낙 큰돈이 들어가다 보니 빚을 내서 지으신 줄로만 알았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 통장내역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아빠사랑해" 오백만 원

"이쁜큰딸이" 이백만 원

"보고싶어요" 삼백만 원

그 후 내역에도 다섯 글자 가득 사랑고백과 함께 언니의 정성이 가지런히 찍혀 있었다.

큰언니 덕으로 걱정 없이 지은 하우스. 언니는 아빠의 든든한 물주가 되어 아빠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곧장 돈을 보냈던 것이다.(언니의 극진한 아빠사랑에 그저 감격... 그 마음에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애정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계속 돌아가신 할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었어도 엄연히, 당연히 우리 집 땅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일들로 작은 아빠 명의로 하게 되면서 아빠는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

자신이 한평생 농사지어 온 땅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듯한 일이 있었으니 아빠 성격 상 내색도 못하고 충격과 울화가 터져 나오셨을 거다.


그리고는 거의 20년 만에,

지난달 너무도 자연스럽게 작은 아빠가 가져가신 땅을 우리 명의로 되찾아 오게 되었다.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서도 되는 그런, 별다른 노력도 없이 얼떨결에 또 순조롭게 우리 땅이 된 것이다.

마치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광복을 한 것처럼 그저 뭉클한,

뭐 한 것도 없지만 아빠가 잘했다 칭찬해 주시며 꼭 안아주실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엄마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하셨다.


아빠가 지금이라도 편안해하시길.

아빠 산소에 가서 아빠가 살아생전 사랑해 마지않았던 소주 한 잔을 부어 드리며 인사를 해야겠다.

이제 소주의 쓴 맛을 알아버린 나도 마셔도 될지 여쭙고서 같이 한 잔해 보려 한다.


혹시 아빠가 엄마를 잘 돌보라고 우리에게 뇌물... 아니 선물을 주신건 아닐까?

엄마 곁으로 와서 엄마를 봐주니 고맙다고, 고생한다고 아빠가 인사를 해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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