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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긴긴밤 같은 엄마의 인생

by 두움큼

푹한 날씨에 곤하게 잠든 까미 옆에 졸린 눈을 끔뻑이는 치즈를 토닥거려 재운 나른한 주말,

외가댁 가족들도 모여 엄마의 여든두 번째 생신을 단란하게 보냈다.


우리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 생신날에 맞춰 생신을 챙겨드리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사흘차이로 느린 아빠의 생신날에 엄마의 생신을 늦춰서 두 분의 생신파티를 같이했었다.

생일은 미리는 해 먹어도 늦게는 해 먹는 게 아니라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구나 생신이 사흘 차이여서 출가한 언니들의 편의 상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엄마 생신 당일에는 미역국도, 케이크도, 생일 축하 노래도 없이 그냥 지나갔었다.

며칠 뒤에 생일파티를 할 거니까 하고 넘어갔지만 어린 나는 그게 내심 서운했다.

그런데 사실 엄마를 살뜰하게 못 챙긴 건 생신뿐이 아니었다.


엄마가 항상 하는 말씀은 ‘아빠 먼저‘ 였어서 으레 뭐든지 ‘아빠 먼저’가 되었고, 그게 ‘엄마는 뒷전’으로 굳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와 아빠의 시소는 아빠 쪽으로 점점 더 기울게 되었다.

그림자처럼 묵묵하게 뒷바라지해 주시고 자신은 도무지 챙기질 않으니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다.

어떤 가족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어느샌가 우리 집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우리에게 양보하고 배려하고 기꺼이 헌신하셨다.

그 희생을 억울도, 분노도 없이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걸 몰라주었다.

만약에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처럼 엄마 생신날에 생신을 챙겼을까?

되돌아보니 엄마의 희생을 감사하지만 당연하게, 안타깝지만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 같다.


자신보다 남편과 자식이 먼저였던 엄마를 알아주지 못함을 단지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로 갚을 수 있을까?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가 되니 코골이 소리도 작아진 가여운 엄마.

‘엄마를 덜 챙기니 서운하다. 신경 써다오’ 이런 말조차 하실 줄 모르는,

본인을 좀 더 챙기며 사는 건 엄마의 인생책에 없었을 우리 엄마.


엄마 인생은 동지섣달 긴긴밤 같다.

외롭고 서러워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 유난히 긴 밤. 그 긴 세월 무수한 밤을 동지섣달 긴긴밤처럼 보냈을 엄마의 일생에 마음이 절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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