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살겠다고 영월로 온 지 이제 꼬박 두 해째가 되어간다.
엄마 심장 소식을 듣고 당장 엄마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잔뜩 겁을 먹었었다.
그때 언니와 내가 부리나케 달려와 곁에 있어서 고비를 넘기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심장은 급속도로 나빠지거나 그렇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도 다행히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나는 석사 졸업 후 박사 과정도 연이어하고 싶었고, 연구원을 업으로 삼아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싶었던
꿈을 보류한 내 인생에서의 2년이란 시간이 사실 조금 아쉽긴 하다.(그때 내 욕심을 좀 부렸더라면 싶기도...)
그럼에도 나의 시간보다 엄마의 시간이 아무래도 빠르게 흘러갈 테니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더 유의미할 것이라 판단했다.
엄마가 드실 수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한 번이라도 더, 거동이 가능하실 때 여행이라도 한 번 더,
함께 그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다.
제주에서 엄마에게 온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여러 부분 감내해야 한다고 각오도 했지만, 살다 보니 엄마랑 사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초저녁부터 잠에 든 엄마는 늦은 밤 잠깐 잠에서 깨신다.
‘얼른 자’라는 엄마의 한 마디 말이 어느 날은 한껏 오른 집중력을 파사삭 깨뜨린다.
그럴 땐 너무 화가 나서 대답도 건성으로 하고 만다.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집 안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하시는데,
그때 눈이 떠지는 날이면 특히나 갑작스러운 불빛에 시신경이 예민한 나는 ‘흐엉’ 이불을 뒤집어쓴다.
어릴 적 내가 쓰던 방은 삼촌이 쓰게 되면서 내 방, 나만의 공간도 없이 엄마와 한 방을 쓰는 것도.
좁은 집에 넘치는 내 짐을 정리할 자리가 없는 것도.
엄마가 삼촌에게 잔소리하는 걸 듣고 있는 것도...
사소한 것들이 거슬려 짜증을 내다가 '내가 엄마를 맞춰야지!' 체념하다가 힘에 부치는 날이 찾아온다.
역시 가족은 떨어져 살아야 애틋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고 격하게 동감이 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엄마에게 온 건 엄마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갑자기 엄마를 잃고 후회하고 힘들어할 내가 자신이 없어서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지만, 나는 결코 효녀가 아니다.
사실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지, ‘모신다’는 것은 참 낯 부끄러운 말이다.
엄마 생각만 해도 눈물 나던 막내딸은 오히려 같이 살면서 엄마에게 잔소리만 늘었고 마음처럼 더 잘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분기마다 여행 가자는 약속도 못 지켰고, 어느 날은 짜증을 내서 엄마를 속상하게 한다.
과연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지금인데, 아옹다옹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후회로 남을까 덜컥 걱정이 된다.
엄마랑 사는 게 힘들 때도 많았지만, 엄마에게 온 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