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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야 Oct 06. 2018

불멸에 도전하는 인간들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냉동인간, 불멸에의 도전

우리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수명이 다하면 그저 죽는 것이라고.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냉동 인간의 등장은 불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Alcor 생명 연장 재단에는 현재 100명이 넘는 인간이 냉동된 상태로 보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꽁꽁 얼려놓고 타임머신에 태워서 시간을 건너뛴 미래에 도착하게 해 줄 뿐, 생명 자체를 연장시켜주지는 못한다.


과학과 자본으로 무장한 생명 연장

현대 과학은 죽음을 운명 탓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속속 밝혀내면서 원인이 있다면 치유가 가능한 과학적 기술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생명연장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고 ‘죽음 해결’을 목표로 삼는 회사가 설립되고 있다. 


바로 2013년 설립된 구글의 자회사 칼리코인데,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만든 칼리코는 노화의 원인을 찾아내 인간의 수명을 500세까지 연장하려고 한다.  구글 벤처스의 빌 마리스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 인간이 500살까지 사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으니까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좋은 이유는 바로 살아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의 행복이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어제는 정말 맛있는 피자와 콜라 한 모금 때문에 행복감을 느꼈지만, 오늘 같은 피자와 콜라를 먹어도 어제만큼은 행복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오랜 세대를 걸쳐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 온 인류의 역사가, 즉 진화가 DNA에 각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제 먹은 피자를 오늘도, 내일도 먹으면서 같은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더 맛있는 피자를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진화가 멈춘 것처럼..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과연 당장 오늘 얼만큼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얼마만큼의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야 하는 걸까? 코 앞에 닥친 수능시험이 갑자기 무기한 연기되었다면 수험생은 어떤 느낌이 들까? 당장 오늘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경제주의 체제는 많은 부를 소유한 소수의 계층을 만들었고 앞으로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등은 끝났고 부유한 소수 계층은 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들은 신이 되려는 노력을 돈으로서 실현하려고 할 것이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스트럴드브러그(struldbrugs)’라는 죽지 않는 인간들이 나온다. 처음 걸리버는 이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생과 불멸은 이들을 더욱 탐욕스럽고 오만하게 만들었다. 삶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나이만 든다고 해서 저절로 교양과 지혜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100년이 넘는 삶을 살게 됐을 때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만큼 지혜로워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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