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지나는 중
‘아… 완벽하게 고장 났다…‘
하루종일 침대에 몸이 묶인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와 이별한 지 3개월째가 되었고 나는 완벽하게 고장 났다. 나는 결국 하루종일 머릿속에 나를 사랑했던 그의 모습과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으로 가득 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현재 건강하지 못한 이별을 견뎌내는 중이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헤어졌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정확한 이별 사유를 모르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의 사랑은 이별을 직면했을 때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연애를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눈물이 차오르기 전에 짤막하게 대답한다. ”그냥 서로 안 맞았던 거지 뭐“이 연애가 끝나고 나는 호구로 유명해졌다. 사랑하면 앞 뒤 안재고 모든 걸 쏟아붓는 호구
공시생과 연애하다 잠수이별로 두번이나 차인 여자
한 줄로 말하자면 매우 우스워지는 게 내 꼴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호구를 아껴주던 주변인들은 분노했다. 헤어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의 지인들은 서로 앞다퉈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며 소개팅 날짜를 잡았다. 헤어진 지 2주 만에 소개팅이라니 머릿속이 어지럽고 마음 어딘가 한구석이 불편해 쓸데없이 솔직하게 소개팅 상대에게 고백헀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바보같이 다 퍼주다가 지독하게 차였어요”
나의 연애사를 대략적으로 들은 소개팅상대는 나에게 물었다.
“그러게 왜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서글퍼졌다. 여태껏 단 한순간도 나의 3년간의 열렬한 사랑이 이런 취급받을 날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와 만나며 나눴던 대화들이 여전히 떠오르자 나는 그저 씁쓸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저는 그저 사랑하며 그가 한 말들이 모두 진심일 거라고 믿었어요”
20대 중반에 만나 3년 연애를 끝내고 나니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그저 잡히는 소개팅마다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성실하게 소개팅을 나갔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소개팅 상대들을 비교하게 되던 스스로가 계산적이라 느껴졌다. 나이, 외모, 스타일, 직업, 성격 그리고 나와 오래 함께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따지고, 재고 있는 나를 보니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시기는 끝났구나. 돈 한 푼 없어도,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나약했어도 그의 미소만 보고 있으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었는데 이전의 연애로 쓰라리게 배웠나 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사람과의 연애는 언제나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끝에 머문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랑을 할 자신도 멍청하게 뛰어들 용기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별 이후 나의 자존감을 바닥을 찍었다. 호기롭게 제 발로 직장을 버리고 나오자마자 나는 3년을 올인했던 사랑을 잃고, 가장 친했던 사람을 잃고 자존감까지 모두 잃은 백수가 되었다. 그의 상황은 나와 반대가 되었다. 공시를 때려치우고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취업이 확정되고 첫 월급을 받기 전에 내게 이별을 고했다.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 기분으로 며칠을 지나 보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로 인해 무너지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웠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적기 시작했다. 깊은 내면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상황들을 보기로 했고 그가 내팽개친 나를 일으켜 단단하게 다지기를 시작했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남았고 나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나를 지키는 것 또한 능력이고 그 능력을 가져야만 단단하게 뿌리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려서 더 이상 무너진 재로 나를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나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한다. 본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스스로다. 그러니 이별 후 나의 가치를 그가 폄하한 대로 나뒹굴도록 두지 않겠다. 이별 후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