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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pr 06. 2022

첫 해외여행 비행기를 놓쳤다.

3년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혼자 홍콩 여행기

불길한 예감은 강렬한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따스한 햇살. 평화로운 공기. 눈을 번쩍 뜬 순간 알았다. 이 시간에 방이 아닌 공항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행기 시간이 30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족 간에는 이상한 레이더망이라도 있는 건지, 내가 허둥대며 이불을 박차고 나온 순간 엄마가 잠도 못 깬 채 다급하게 방문을 열었다. "너 늦은 거 아냐?!" 





2018년 1월, 나는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목적지는 홍콩. 가본 해외라고는 일본이 전부였고, 한국이 아닌 나라는 모두 나에게 궁금하고 두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혼자 꼭 떠나보고 싶었다. 5일의 시간이었다. 여자 혼자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안전하고, 음식이 맛있고, 날씨가 좋은 곳. 바로 홍콩이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야경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나라였다. 이 여행을 위해 5개월간 차곡차곡 아르바이트 적금을 모았다. 대학시절 생활비를 쓰기도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황홀한 여행기를 꿈꾸며 소액을 한 푼 두 푼 모은 것이었다. 비행기 티켓도 4개월 전 가장 저렴하다는 소식에 재빨리 끊어놓았다. 



그런 첫 여행을, 시작부터 놓치다니. 이른 아침 비행기를 끊어놓은 나를 탓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에 들뜬 나머지 여행지에서 1시간, 1분이라도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수가 뭐람. 일단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문 앞의 캐리어를 끌고 현관문을 박차듯 나섰다. 그렇게 가족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행 지하철을 타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미 비행기는 떠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네이버 검색창에 '비행기 놓쳤을 때'를 검색했다. 일단 공항에 가야 했다. 비행기 티켓을 환불하고, 남아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다가 일주일치 짐은 또 얼마나 바리바리 싸온 건지. 공항에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포데스크에서 나의 상황을 말하자, 오늘 남아있는 홍콩행 비행기 6편을 메모해주었다. 



한 번에 왕복 비행기를 결제한 터라, 오는 비행기까지 모두 환불하고 다시 결제해야 했다.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체크인을 진행하고 있는 항공사는 줄을 서서 승무원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이 줄이 맞는 건가'를 고민하며 초조함과 불안한 마음으로 줄을 서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남아있는 좌석은 1등석뿐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른 비행기는 대기줄이 없었지만, 나를 태워줄 자리도 없었다. 비어있는 벤치에 털석 주저앉았다. 



그 순간, 공항 방송에서 쩌렁쩌렁 낯익은 이름이 들려왔다. "000님의 주민등록증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000님은 3층 인포데스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000님의 주민등록..." '나랑 이름이 같네...'라고 멍하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서둘러 지갑을 열어보니, 방송의 주인공은 나였다. 정신없이 공항을 뛰어다니면서 민증까지 흘렸나 보다. 



머릿속엔 '무조건 오늘 떠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와중에 핸드폰 배터리까지 10%. 마음속으로 '제발...'을 외치며 남아있는 4개의 항공편을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바로 다음 비행기가 딱 한자리 비어있었다. 

잠깐.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 더 있다 올까? 

왠지 시작부터 고생하는 이 순간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왕복 날짜를 하루 늘렸다.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잡아가며 결제를 이어갔다. 하늘이 도왔는지 마지막 자리를 얻었다. 4개월 전, 30만 원에 결제한 비행기표를 환불하고 당일에 60만 원의 비행기표를 얻었지만,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떠날 수 있다니!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현지 와이파이 수령 시간 변경 신청을 하고 기차표 스케줄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고민했다. 원래 일정에는 없었던 디즈니랜드를 가보기로 했다. 혼자 가는 게 걱정됐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더 생긴다면 충분히 가볼 만한 선택이었다. 서둘러 디즈니랜드 표를 예약했다. 정신없는 시간은 비행기 자리에 앉는 순간 일시 정지되었다. 순간 현실감각이 사라졌다. 꿈은 아니겠지..? 


비행기가 활주로를 천천히 달리는 순간, 와이파이 대여 회사에서 변경 확인 전화가 왔다. 배터리는 1%였다. 점점 빠르게 달려가는 비행기와 꺼져가는 핸드폰 사이 다급하게 전화를 마쳤다. 비행기는 이륙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첫 6일간의 홍콩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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