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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Dec 03. 2020

수능 이틀 전, 삼수생 동생이 물었다.

언니가 몇 살이지?

오늘, 동생은 세 번째 수능을 본다.


2년간 매일 새벽 6시 반이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시 깨곤 했다. 그리고 달이 뜬 지 한참이 지난 늘 같은 시각에 들어왔다.

그렇게 게으른 녀석이, 저렇게 독하게 하는구나.


재수를 하던 해에는 점심을 포기하고 새벽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고, 그만큼의 예민함도 당연했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잔혹함에 뼈저린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안겨 우는 동생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부분의 아픔이라 위로하는 방법에 서툴렀다. 실패는 쓰리고 현실은 냉정했다. 삼수는 저 먼 사람들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이야기가 된 순간 받아들였다. 재수 학원비는 대학 등록금보다 무거웠으며 연락이 되지 않는 대학생보다 무서운 건 연락이 되지 않는 삼수생이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신의 어깨에 묵묵히 짐을 짊어졌지만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웃으며 짐의 크기를 비교하기도 했다.


삼수를 하던 올해에는 동생에게 작년에 없던 약간의 여유를 보았다. 노련함이라고 해야겠다. 고통을 조절하는 방법과 스스로를 챙기는 방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가끔은, 투둑 하고 터지기도 했지만. 수능이 한 달 남짓 남았을 때에는, 알게 모르게 가족들이 동생의 안부를 눈치로 살폈다. 그럼에도 동생은 우리 중 가장 밝았다. 그에 충분히 감사했다.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뒤돌아 흘린 눈물이 많았을지. 종종 위염과 부담감에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을 뒤로한 채 가족들 앞에선 농담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길 하기도 했다. 동생의 저녁은 유일하게 말하는 시간이었다.


수능 이틀 전, 동생이 대뜸 물었다.


"언니가 몇 살이지?... 벌써 중반이네 언니도."

"언니는 20대에 하고 싶은 게 있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단숨에 대답했다.


"많~이 버는 거."

"돈은 30대에도 벌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냥. 돈 때문에 20대에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싶지 않아. 그걸 왜 물어?"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너무 이상적이래."


아차. 나 너무 현실에 찌든 대답을 해버렸나. 이미 대학교 3학년을 바라보는 동생 친구들의 시선에서 동생의 꿈은 이상적인 단어에 그칠 뿐이었다. 그 꿈이 대학에 무탈히 합격한다는 것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더 이상 거친 길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현실적인'충고란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나도 아직은 부딪히는 데 노련하지 않은 껍데기만 어른일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안정적이라 생각하는 그 '현실'에 가까운 과정은 모두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알아주는 대학교, 알아주는 회사. 그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름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한지. 고작 몇 년 더 사회를 겪어본 언니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현실적인 게 뭔데. 그것도 절대 평탄하지 않아. 그럴 바엔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심오한 질문에 비교적 간단한 답을 내려놓곤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았는데, 진짜 20대에 하고 싶은 게 뭘까. 뭘 해야 '20대 잘 보냈다'라고 할까. 나 그동안 뭘 했을까?


동생이 고된 시간을 보낸 2년간, 나는 꽃다운 나이를 만끽했다. 20대. 멀리 지나온 이들에게는 아픔조차 부러운 나이라고 한다. 나 또한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웠다. 그 과정은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힘든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성숙하다. 의미 없는 하루는 없었다. 하루 안에 여러 개의 행복들을 찾으려 했고, 반복된 시간 속에서도 미래를 그리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러니 기특하게 여겨도 된다. 비문학을 분석할 생각만 하는 줄 알았던 동생에게 더 먼 기대가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메모장을 열고 남은 20대를 보낼 사소한 일들을 가득 적어보았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더 넓은 눈을 가지고 30대에는 세계여행을 떠나야겠다. 주저리주저리. 스쳐 지나갔던 기대를 글자로 붙잡아놓았다.


동생에게 샤프로 써 내려간 노력의 흔적들은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잠시 후 시험장 교문 앞에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수백 번 고민하겠지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든,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에. 아직 활짝 꽃 피우지 않았기에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행복들을 차차 기대해본다. 가장 가까이서 조용히 응원하는 언니로서.


잠에 들기 전, 동생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혹시 못 보더라도 나 미워하면 안 돼."

"엄마는 절대, 너를 미워하지 않아. 이미 열심히 해준 것만으로도 엄마는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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