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다 보면 더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자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나에게 선물을 받은 느낌
조금은 더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메모 中
여행 4일 차
여유의 미덕. 서두르지 않아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어제의 긴 이동에 지친 나머지 이르게 눈이 떠졌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근해진 잠자리 덕분이었는지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여행 전 살펴본 날씨로는 오늘과 내일은 비 오는 날이었다. 비를 좋아해서, 그런 날씨를 조금은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흐리기만 했다. 흐린 건 싫다.
간단히 씻고 나와 새로운 아침 풍경을 산책했다.
이곳은 깊은 시골이다. 감귤밭이 펼쳐진 시골 산 골목골목 현무암 돌담과 오래된 창고가 눈에 띄었다. 새벽 공기의 촉촉한 내음에 더해 걸음마다 귤꽃 향이 스며들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소리는 새소리와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큰 숨을 들이쉬면 몸속이 상쾌해졌다.
큰 개들이 낯선 사람의 모습에 짖었다. 시골 개들은 성량이 남다르다. 혼자 있으니까 갑자기 저 목줄이 풀리면 난 큰일 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이만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토스트에 버터를 바른 조식을 먹고 책을 읽었다. 너무 어려운 책을 가져온듯하다.
흐린 날씨가 괜히 우울하게 만드는 건지 피곤이 떨어지지 않은 건지 잠이 몰려왔다. 그렇게 다시 푹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두시였다. '서귀포 구경은 해야지 그래도. 맛있는 것도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나갈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왠지 운동화보다 플랫슈즈가 신고 싶었다. 그땐 시골길을 그렇게 오래 걷게 될 줄은 몰랐다.
가려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우울할 일이 아니야. 괜찮아, 조금만 더 걷자
걷고, 걷고, 걸었다.
그러다 구름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원한 바람 소리 그 틈으로 해가 들어와 온도를 높였다.
텅 빈 시골길이지만 골목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등장하기도 했고, 다른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갑작스레 강아지가 보고 싶다. 같이 놀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길에 예쁘고 큰 건물이 하나 등장했다.
'슬아네 가게'
아까 지도에서 본 것 같은데. 본능적인 직감으로 여기가 나의 장소임을 알았다.
웬걸. 웬 귀엽고 토실한 생명체가 날 보고 있었다. 강아지?
이름은 아이쿠. 아이쿠!할때 그 아이쿠다.
나를 좋아했다. 한참을 같이 놀았다. 나에게 간식과 담요를 들고 왔다. 뛰 다니며 담요 놀이를 하다 지칠 때쯤 카페에 들어서니 맛있는 빵과 아늑한 카페가 있었다.
돌아오니 더 좋은 순간이 나타났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 빵이 이 가게의 베스트다.
노트북을 펴고 좋아하는 올리브 빵을 먹으며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지었다. 왠지 일도 더 잘되는 느낌.
이 빵의 이름은 생긴 대로, 엉덩이 빵이다.
이렇게 행복한 일들이 연속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충동적인 여행을 선물한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예상치 못한 행복의 가치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느꼈다. 함께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내가 해야 할 일도 그런 일인 것 같다.
여기서는 버스정류장이 그리 멀지 않았다. 가고 싶었던 목스키친을 금방 버스를 타고 찾아갔고, 리조또는 끝내주게 맛있었다. 딱새우와 새우 로제 리조또 모두 완벽했다.
"혼자 여행 오셨어요?" 직원분께서 물으셨다.
"네 ㅎㅎ"
"어젯밤 여기 바다에서 돌고래 떼가 나왔대요. 혹시 모르니까 한번 보세요!"
돌고래가 나온다는 기대를 안고 볼 수 있는 바닷가까지.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벌써 해가 저물었다. 차로는 15분,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니. 버스도 언제 올지 몰라 난감했다. 제주에서 버스 대기 30분은 양호한 편이다. 텅 빈 도로 위에서 덩그러니 고민했다.
그때 건너편 도로 택시가 등장했다.
"기사님!!!"
감사하게도 택시 기사님을 만나 편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여유의 미덕을 알게 된 하루였다.
샹그리아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스탭분께서 나눠주신 오렌지를 곁들여 먹으며, 이 글을 쓴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해야겠다. 벌써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