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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ul 16. 2021

12년이 흘렀고, 이사를 했다.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 번째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이사는 12년 전이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이사는 그저 익숙했던 집을 떠나온다는 게 슬펐던, 익숙했던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게 어색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간 집에서 학창 시절과 대학시절을 모두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사 가는 곳은 신축 아파트다. 전 집이 30년 된 오래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왠지 새 집으로 이사 간다는 건 헌 집을 주고 새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집은,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겨있다. 많이 웃고, 울기도 하고, 소소하게 반복되는 대화들이 일어났던 우리의 장소. 그렇지만 이제는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이 왔다. 집을 꽤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고 신혼부부가 전체 리모델링 후에 입주했다. 좋은 일들이 있었던 장소에 따뜻한 사람들이 이어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사라는 게 처음인 기분이었다. 이사 전날에는 직접 새집 청소를 했다. 우리 가족과 이모들은 청소도구를 무기처럼 들고 온 집안을 쓸고 닦고 문질렀다. 공사기간 동안 쌓인 먼지들과 분진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요새 친환경 원료를 쓰는 건지, 다행히 새집냄새는 나지 않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라니. 천장의 먼지를 털어내며 실감 나지 않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슬아, 오늘 좋은 꿈 꿔."


큰 이모는 이 말을 뒤로하며 돌아갔다. 마지막 날 밤, 포근한 이불을 덮고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12년간 매일 밤 누웠던 이 자리에서 그동안 했던 생각들, 새로운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지 와 같은 여러 색의 생각들이 겹쳐지나 갔다.



이사는 이른 7시부터 시작되었다. 5시에 눈을 뜨고 챙겨야 할 최소한의 짐을 꾸렸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이 큰 박스들과 바퀴 달린 이동 수레, 비닐 포장지들을 들고 들어왔다. 어렸을 땐 방해하지 않는 게 돕는 거라지만, 이날은 장녀의 역할이 많았다. 이사 가며 그동안 사용했던 전자제품과 가구들을 모두 무료로 나눔 하기로 했다.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지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제품들이었다. 요즘 많이 사용한다는 당근에 게시글을 올렸다. 다행히 모든 제품들이 새 주인을 만났다. 떠나는 이사가 마칠 시간 즈음으로 거래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투둑 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다리차로 짐을 내리는 동안 만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길 바랐는데, 야속하게도 점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약 두 시간 동안 여섯 분 정도의 새 주인 분들이 오고 갔다.


10시. 동시에 두 남자분이 서랍장을 가지러 오셨다. 가구의 부피가 커서 이동을 난처해하셨다. 나는 도움이 안 되어 보이셨는지, 서로 하나씩 들어주자고 하셨다. 그렇게 두 개의 서랍장이 나란히 떠났다.


11시. 오븐을 가지러 오셨다. 중년 남자분은 작은 차를 타고 오셨다. 이렇게 부피가 큰 줄 몰랐다며, 차에 실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잠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분은 한 달 전 가장 먼저 연락을 주셨던 분이다. 가장 오래 기다리셨기에, 아쉬움도 배로 크신 듯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시고 빗속으로 뒤돌아가셨다. 차에 타기 전 큰 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비 오는 날 이사하셔서 부자 되실 거예요!"


바로 이어서 냉장고를 가져가기로 하신 분께 연락이 왔다. 근처 군부대 원사님이셨다. 군부대 px에 두고 싶은데 가져가도 되겠냐며 연락이 오셨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원사님은 부대의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한다. 예산을 알뜰하게 아끼는 게 좋은 거라며. 비가 오는 날씨에 급한 대로 냉장고 위에 큼지막한 비닐을 덮어두었다. 잠시 후, 군부대 차량이 아파트 뒤편에 도착했다. 이병으로 보이는 앳된 군인 세명과 중년의 원사님이 일렬로 서있었다. 우산도 없이 계시는 모습에 우산을 씌워드리자 괜찮다며 묵직한 박스 하나를 건네셨다.

"정말 별건 아니고요, 이사 가신다고 하셔서 부대에서 건빵이랑 세제 이것저것 넣었습니다. 무료로 나눠주셔서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아빠는 원사님과 감사의 악수를 나누고 냉장고를 옮기는 길을 도와주셨다.


이밖에도 다양한 분들이 거듭 감사인사를 하시며 가구와 함께 떠나셨다.

불타는 전화기가 조용해지고, 사다리차도 떠났다.



말끔히 비우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은 상쾌하다. 새로운 가구를 하나둘씩 들여오고, 전자제품이 설치되었다. 낯선 기분이 주는 묘한 설렘. 첫 며칠은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눈을 떴을 때 어색한 천장, 집 안에서 자꾸만 꼬이는 동선, 익숙하지 않은 바깥 풍경.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건 거실에서의 시선이다. 이전 집은 도심 한복판 아파트였다. 거실에서 보이는 가로수 사거리에는 늘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 불빛들이 예쁘다고 느꼈다. 그러나 초록색 생명을 좋아하는 아빠가 베란다에 놓은 것들이 조금은 어색하곤 했다.

이곳은 바로 앞에 늘 푸른 산이 있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뻗어있고, 그중에서도 목련나무가 나뭇잎들을 흔들거린다. 큰 창이 가득 차게 푸른 모습이 가장 낯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베란다에 식물 펜스를 설치한 아빠는 도심에서 어울리지 않았던 화분들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기뻐했다. 여기는 차가 없다. 유일한 소음은 개구리와 새들이다. 소음이라기엔 너무 듣기 좋다. 바람 부는 날엔 나뭇잎이 바람에 비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사가 잦지 않았던 건 감사한 일이다. 그 덕분에 가구들이 상하지 않았고, 한 장소에서 진득한 추억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았음에도 새로운 공간에 금방 익숙해져 버린 모습이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애써, 그 시간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삿날이라며 좋은 말씀을 건네주신 많은 분들에게 따스함을 느꼈다.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 마음이 좋았다. 우리의 이사를 가장 아쉬워하신 분이 있다. 매일 뵈었던 경비아저씨. 오래 살았던 만큼 부모님과 나 모두가 경비아저씨들과 가깝게 지냈다. 늘 맑게 웃는 표정으로 반겨주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곳은 친근한 경비아저씨보다는 먼 직원분에 가까운 느낌이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정이 많은 우리 가족에겐 아쉬운 일이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나를 키운 동네를 떠나온 기분은 조금 슬프다.

아무리 새로운 게 좋더라도 익숙한 장소만큼 아늑한 것도 없다. 가끔씩 동네를 찾아가면 그런 마음들이 들겠지만 새로운 동네의 편안한 구석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를테면 크림치즈 깜빠뉴가 유명한 작은 빵집, 학교 옆 울창한 숲이 보이는 도서관, 큰 살구나무가 보이는 벤치가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추억을 새로이 쌓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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