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산타가 되어보자
겨울에 태어나면 겨울을 좋아한다던데. 나는 예외다. 손발이 유독 차갑고 추위를 많이 탄다. 그러니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두렵다. 그래도 '그래, 이게 겨울이지.'라고 언제 반겼냐는 듯 기뻐할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 활짝 연 창문에 세상의 풍경이 바뀌어있을 때. 세상 사람 모두 다 놀라겠지?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멀리서 바라볼수록 세상이 순수해 보인다. 순수함이 내리자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뭉친 작은 눈으로 부모님이 큰 눈덩이를 만들어주는 모습이 예뻤다.
올해는 유독, 사람들이 눈사람에 진심이었다.
답답했던 일상에 잠시 즐거운 핑곗거리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거리에는 거리를 유지한 채 만들어진 각자의 모습들이 놓였다. 걸어 다니며 다양한 눈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본연의 모습도 귀여웠지만, 기다렸다는 듯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뭉쳤을 모습이 상상되어 더 귀여웠다.
한편으론, 나도 만들고 싶었다. 눈사람. 눈사람은 혼자 만들면 재미가 없다. 여럿이 해야 더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기쁨을 공유해야 한다. 눈사람은 어쩌면 행복한 감정의 결정체 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애들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 친구다. 아직도 눈사람을 만들자고 해주는 나만큼 철이 덜든 친구가 있어 기뻤다. 우리는 일이 몇 시에 끝나든 늦은 밤 눈사람을 만들 생각에 설레는 감정이 퐁퐁 올라왔다. 그렇게 친구 집과 우리 집 사이 즈음 고등학교 앞 골목길에서 만났다. 눈에 손이 젖을까 장갑과 비닐장갑 4개를 들고 갔다. 맙소사. 친구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왔다! 나는 하수였다. 이 친구 나보다 더 진심이었다.
"아니 얼마나 크게 만들려고 그래?"
라고 말했던 나는 10분 뒤 누구보다 동네에서 가장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했다. 열두시가 넘어 골목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경찰차에 "우리 애들로 보고 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괜한 걱정을 해보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눈사람에 열중했다. 눈사람의 몸집이 커질수록 뿌듯함이 커졌다. 비로소 그 공간에 있는 눈이 사라졌을 때,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눈과 입을 만들고, 단추를 달고, 혹시 몰라 가져 간 일회용 숟가락으로 코를 만들었다. 남의 집 벽돌담 앞이었지만, 귀여운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보고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우린 반복했다. 왠지 산타가 된 기분이었다.
눈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재료다. 또 만인에게 공평한 장난감이 되어준다. 눈사람을 만든 사람들도, 만들어진 눈사람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작은 눈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사진을 찍는 사람들. 녹아버린 눈사람이 아쉽지만서도 가장 추운 시간 우리 곁에 잠깐 존재하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우리의 온기가 전해졌길 바라며.
밤 12시가 넘은 시각, 우리와 같이 눈사람을 만들러 온듯한 고등학생 3명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 친구들이 만든 듯하다며. 눈사람이 동그란 건 고정관념이었다. 정말 '눈 사람'을 만들다니! 표정이 정말 귀엽다. 이 학생들은 뒤태에 진심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