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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an 04. 2022

아래층에 이런 쪽지는 처음이라

아랫집은 게이머, 윗집은 쌍둥이 아이들

유명 연예인도 층간소음으로 이슈가 되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모두가 집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이곳이 완벽히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게 되었다. '아랫집'이라 불리는 이웃이 존재하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사 온 지 2개월이 흘렀을 때 즈음 일이었다. 동생의 방에서 매일 밤 12시부터 알 수 없는 남성의 고성방가가 시작되었다. 창문을 여니 더 선명하게 들리는 욕설. 아랫집 같은 방에서 탈칵거리는 게이밍 키보드와 마우스를 배경음악으로 온갖 욕설과 고성이 반복되었다. "아아아아악!!!!!!! 아이씨$!&$N#FU!@$!!!!!" 소리를 지르며 몸에 열이 나서인지 창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이는 해가 뜨기 직전까지 지속되었는데, 그렇게 2주가 흐르자 동생은 스트레스로 미칠 지경에 이렀다. 분명 어떠한 조치가 필요했다. 관리실에 이야기해도 될 문제이지만, 괜히 중간 관리인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게 갈등을 심화시키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현명하게 대화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욕을 너무 잘하는데..? 직접 찾아가는 건 무서워서 안 되겠어."


동생과 마주 앉아 쪽지를 쓰고 문 앞에 붙여놓기로 결정했다. 노트에서 종이 한 장을 야심 차게 찢어놓고 펜을 뽑아 든 채 멈췄다.


"그래. 이제 어떻게 쓸 거야?" 

"아.. 이런 거 써본 적 없는데..."


어쨌든, 서로 처음 만난 이웃이기에 최대한 예의를 지키되 우리의 곤란한 상황을 어필하려 노력했다. 동생을 '우리 애'라고 이야기하며 엄마가 쓴 척도 해봤다. 펜 뚜껑을 닫고 아래층 대문에 살며시 종이를 붙였다.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부탁하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는 이렇다. 





그날의 새벽은 조용했다. 당시 더운 여름이라 대부분의 방 창문이 열려있었는데, 동생의 방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면 아래층에서 살며시 창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시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너무 신경 쓰이게 한건 아닌가라는 미안한 마음도 동시에 들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래층 아주머니가 벨을 누르셨다. 띵-동 띵-동 

"아랫집이에요~" 

머쓱한 마음으로 문을 열자 직접 씻은 체리를 큰 지퍼백에 한가득 담아 안겨주셨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아들인데,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라며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셨다. "세상에 그 쪽지도 너무 감사해요. 이거 보고 정신 차리라고 아들 방문에 붙여놨어요~ 호호호" "저희도 정말 감사해요. 저희 집이 시끄러우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랫집 이웃에게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라,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보통은 윗집 사람들이 아랫집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입장이 한참 뒤바뀐 기분이었다. 엄마는 며칠 뒤 블루베리 잼을 만드셨다. 병 가득,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전해드렸다. 






윗집에는 쌍둥이 남자 아이들이 산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곤 하는데, 그때마다 윗집 아주머니는 정말 죄송하다는 마음으로 물으셨다. 

"많이 시끄럽진 않나요..? 매트를 모두 깔아놓긴 했는데 그래도 시끄러우실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괜찮습니다, 아이들인데요."

사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오전에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하교를 마친 오후에는 가끔 말이 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까르르 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때면 얼마나 신나면 집에서 저렇게 뛰어다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1년에 뛰어다닐 일이 손에 꼽는 성인들만 살고 있는 우리 집과 윗집의 풍경을 비교하면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게이머가 사는 아랫집과 두 쌍둥이 남자아이가 사는 윗집을 사이에 둔 우리 집. 직접 대화하지 않았더라면 서로 민감한 감정들이 쌓였을 거란 예감이 든다. 가장 가깝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이웃들을 만난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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