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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an 11. 2022

웃긴 이야기 안 웃고 이야기하는 방법

상대방의 몫을 남겨놓기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개그욕심이 있다. 그 욕심이란 게 크든 작든 누군가 나로 인해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보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을 넘어 짜릿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매번 웃기는 데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쩌다 그 이야기들의 주고받는 분위기와 서사 그리고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받아치는 대사가 정확히 맞아 들어야 한다. 이런 일은 내가 원한다고 늘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주변의 분위기 없이도 웃기는 게 가능한 방법이 있다. 바로 '웃긴 이야기'다. 


깔깔 유머집에 나오는 시시한 아재 개그들보다는 실생활에서 일어난 생활밀착형 웃긴 이야기가 효과는 직빵이다. 문제는, 본격적인 웃음 포인트가 터지기 위해 필요한 배경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서부터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나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리며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지만 결국 푸하학!하며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웃어버린다.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한 사람들은 '뭐야?'라는 표정으로 그저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마는 것이다. 마치 그들의 웃음의 몫을 내가 대신 채워버린 듯한 상황이다. 


웃긴 이야기는 안 웃고 이야기해야 맛있다. 웃음 포인트인 순간에 그 상황을 실감 나게 표현해주면 완벽하다. 개그맨들이 가장 잘하는 게 그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의 이야기와 행동에 배꼽을 잡고 뒹굴어도 뻔뻔한 표정을 귀신같이 유지한다. 그 모습에 한번 더 쓰러지고 만다. 나도 웃지 않고 웃긴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매번 실패했다. 어떻게 그들은 웃긴 이야기를 안 웃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뒤에는 그들의 철저한 고민과 반복된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발짜국 동선과 말의 호흡까지 완벽하게 계산된 결과다. 그들에게 웃음이란 사명이다. 단지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포인트를 살리는 스토리에 사람들의 웃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남겨주는 일이다. 슬픈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전해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앵커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들이 매번 눈물을 훔치고 엉엉 울며 이야기한다면, 완벽한 전달자로서 소임을 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전달받는 사람들의 몫을 남겨놓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감정을 억누르는 수많은 연습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일반인들 역시, 웃긴 이야기를 안 웃고 이야기하려면 여러 번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대개는 본인이 재미를 느낄 때에만 웃긴 이야기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흥미를 잃을 때쯤이면 머릿속에서 사라진 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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