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기 싫은 날〉4.
누군가 물었다. “교회를 왜 떠났어요?” 나는 머뭇거렸다. 한 줄로 요약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없었다. 바늘 같은 아픔에 조금씩 서늘해져 결국 돌아섰다. 차라리 목사에게 돈, 성, 권력 같은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나를 설득하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사는 깨끗했다. 다만 그 반듯한 칼날에 베인 상처가 심장에 고였다. 목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걔는 좀 망해야 해요.”라고 하거나, 잿빛 눈으로 “그러면 걔 인생은 끝난 거라고 봐요.”라고 했을 때, 가슴이 따끔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이 올곧음이라면 그는 괜찮은 목사였다. 하지만 예수는 사랑을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존재 앞에서 한결같이 메마르고 매몰찼다.
목사는 교회 개혁을 외치며 모든 제도와 형식에서 벗어나자고 했다. 본당과 교육관 사이에는 어른 키만 한 십자가가 있었다. 목사는 그 십자가에 자신의 옷을 걸어 놓았다. 십자가를 옷걸이로 쓰면 형식과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자며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을 때 더 이상 손뼉 칠 수 없었다. 그는 대형 교회 목사 세습에 반대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목사는 자주 비교했다. 한글 배우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하며 “이 삐뚤빼뚤한 글씨 안에 담긴 간절함이 ‘마음’ 없이 예배당에 앉아 있는 우리보다 훨씬 훌륭합니다.”라고 소리쳤다. 타 교회가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간 주일에는 이런 말을 했다. “교인들이 2박 3일 성경 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교인 중에 고위공직자도 있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내 ‘마음’이 문해 교육 중인 할머니, 통독하는 고위공직자보다 누추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목사의 그런 설교가 불편하다고 말하자 Y 집사가 답했다. “칭찬하는 게 뭐가 문제예요? 집사님이 너무 민감해요.” 목사는 설교 시간에 S 집사와 P 집사도 추켜세웠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다만 칭찬받지 못한 나는 멈췄다. 꽃으로 맞아 조금씩 멍들었다.
그때껏 교회는 내 삶의 중심이었다. 주일은 반드시 교회로 향하고 남편의 봉사를 내 일처럼 도왔다. 그는 바빴다. 남편은 평일 저녁에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요일에는 차량 운행을 했다. 토요일에 성가대 연습을 하고 주일은 중고등부와 보냈다. 때마다 교회 풀을 깎고 데크를 정비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두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남편의 1년은 교회력을 따라 움직였다. 1월이면 겨울 수련회, 3월이면 부활절 칸타타, 6월이면 전교인 야외예배를 준비했다. 한숨 돌리면 여름 수련회가 코앞이었다. 가을은 추수감사절, 김장과 함께 지나갔고, 성탄절 칸타타와 발표회로 한 해를 마쳤다. 그러면 다시 겨울 수련회였다. 목사가 우리에게 말했다. “교회 봉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목줄을 묶지 않아 개똥이 지천이었고 매년 열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주일 아침마다 달려오는 개의 무리가 당황스러웠다. 목사는 어쩔 수 없이 어미 개에게 목줄을 묶었고 교회 현판 위로 개집을 올렸다. 그가 말하던 그 ‘마음’이 도대체 무엇일까. ‘교회’라는 글자 위에 놓인 개집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장로 세 명이 목사에게서 돌아섰고 한 명이 남았다. W 장로가 주일 대표기도 때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고했다.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와 안타까움이 담긴 기도였다. 그 고민이 내 것 같았다. 기도 후 설교 시간, 무거운 분위기에서 목사가 어떻게 설교를 시작할지 걱정이 됐다. 목사가 생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예배 전에 제가 사무실에 있는데, P 집사님이 저를 보고 제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 그러셨어요. 정말 그런가요?” 몇 사람이 크게 웃었다. W 장로의 기도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목사에게 자신을 떠난 장로 셋은 틀린 사람이고, 자신 곁에 남은 장로 하나만 맞는 사람이었다. 장로 셋의 마음은 없었고 장로 하나의 마음만 있었다.
나와 남편은 목사와 가까웠다. 처음 5년은 공부방을 함께 운영했다. 함께 지낼수록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이 늘었다. 목사는 ‘신’의 자리에 있었다. 목사 앞에서 나는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아였다. 그는 말하고 우리는 움직였다. 그러다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지적했다. ‘신’을 추구하다가, ‘신’이 되어버린 사람. “이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야 말을 들어요.” 그는 가스 배달원에게 욕을 퍼붓고 공무원과 다퉜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쟁론하고 제직회에서 소리 질렀다. 더 이상 설교가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설교뿐이었다. 목사는 사랑을 이유로 내 마음을 계몽하고 무너뜨리고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가 아는 사랑이 나와 달랐다.
내가 사모에게 물었다. “저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마음’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사모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그냥 식상하게 쓰는 말 아닌가요? 설교할 때 흔히 하는 말이잖아요.” 상한 마음을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몸부림친 날들이었다. 내게는 이리도 어려운 마음이, 그녀에게는 질려버린 일상이었다. 식상하다니….
나는 목사가 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 다만 내 마음이 완전히 길을 잃었다. 목사에게 배운 대로 나는 나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감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훈계했다. 마음을 비난하고 몰아세우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분열되었다. 목사는 알아야 한다. 그의 말 한마디로 한 존재가 무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돌고 돌아 한참을 마음 곁에 머문 뒤에 깨달았다. 그의 말 한마디로 뭉그러질 만큼 내가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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