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Dec 03. 2023

자살 유가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

프롤로그. 상실의 아픔을 지닌 당신에게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오빠가 떠나갔던 2020년.


2020년 11월. 오빠는, 계절만큼 차가운, 서리 같은 마음을 품었다.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그 이별은 전적으로 오빠의 선택이었다.


오빠가 서리 같은 마음을 품기 전,

부모님과 언니는 오빠가 붙잡고 있는 마지막 끈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같이 붙잡았다.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울면서 떠나가려는 오빠를 붙잡았다.  


그에 반해, 집을 떠나 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빠가 어떤 상황인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오빠가 떠나간 후 우리 가족은 처참히도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세상은 야속하게도 계속 돌아갔다.


오빠를 떠나보내고 나서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2021년의 시험을 준비했던 ‘공시생’


그 당시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2021년 시험을 마지막으로, 반드시 합격하겠다며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오빠의 장례식을 마무리하고 내게 남겨진 것은 상실에 무너져버린 가족과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21년 시험까지의 디데이였다.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절규하고 있는 가족들 중 단 한 명, 바로 서야 할 사람을 고르자면 그건 나였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부모님과 마지막까지 오빠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언니 중, 오빠에게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건네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슬픔의 늪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에게 내가 가져다줄 수 있는 희망은 공무원 시험 합격이 유일해 보였다.

우리, 오빠를 위해서라도 일어서자고. 오빠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상을 지켜나가자고.

나약하디 나약한 내가 해냈다면,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고, 말해야 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오빠가 있었다.

오빠에게 닿지 못할 편지를 쓰고, 희미해져 가는 오빠에 대한 기억을 적어 내릴수록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소리 없는 절규가 덮쳐왔다.

사과하고 싶어도 사과를 받아줄 오빠가 없었다. 받았던 것들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어도 보답을 할 오빠가 없었다.

닿지 못할 마음이 흘러 넘칠 때면 잘 버티는가 싶다가도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내가 알던 오빠는, 본인 때문에 동생이 그렇게 무너져내려 있는 모습을 보면 편히 세상을 떠나지 못할 사람이었다.

 나보다는 오빠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오빠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이 내가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오빠의 죽음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덕분에 필사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 감정은 내려놓고, 오빠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매일매일 되뇌며 공부를 계속해나갔다.

고통스러웠던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엔 시험에 합격했다.


자살 유가족으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


 오빠가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오빠를 잃은 상실감에 허우적 대던 시간들,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써 내려갔던 수많은 일기와 닿지 못할 편지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며 고민해야 했던 많은 생각들. 오빠의 죽음 앞에 무너져버리지 않고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


그 3년 간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이다.  1년에 13,426명, 하루 평균 36.7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고인 1명 당 남겨진 이를 3명으로만 잡아도 하루에 110명. 하루에도 110명의 사람들이 자살로 떠나간 이들 뒤에 남겨진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슬픔조차 자유로이 꺼내보이지 못한다. 가족이 사고로 죽었다고 할 때와, 자살로 죽었다고 할 때 사람들이 보내오는 시선이 다르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 유가족들은 더 꽁꽁 숨어버리고, 음지에 방치된 상처는 계속 곪아간다.


 이 글은 자살 유가족으로서, 오빠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잘 보내주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 담긴 글들이다.


오빠를 떠나보내고 나서 장례식을 치르고 오빠의 흔적들을 정리했던 2020년 11월의 시간들.

오빠의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정리해 갔던 수험생활.

그리고 자살 유가족으로서 세상에 나아갔던 사회생활.

오빠의 자살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오빠가 내게 남겨준 것들까지.


상실을 겪어야 했던 당신에게


 사람은 살다 보면 소중한 대상을 필연적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이 될 수도, 연인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반려 동물과 식물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 모든 이별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잘 보내주기’이다. 내 삶에서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던 대상의 기억을 잘 정리하고, 그 대상을 위해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이 것만은 상실의 대상이 무엇이든, 상실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떠나간 이들을 위해 남아있는 이들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테니.


이 글들을 통해, 소중한 이를 상실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나약하디 나약했던 나는, 이런 시간들을 통해 단단해지며 다시 일어섰다고.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떠나간 이들이 하늘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겨진 우리가 잘 살아야 한다고.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여러분은 각자의 아픔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책을 펴내고자 그리고 브런치스토리를 연재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참고할 만한 비슷한 주제를 담은 책들을 찾았다.

그러나 찾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다. 그들의, 그리고 나의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픔을 극복해 냈다고 해도, 그 슬픔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이 글을 선택하고 읽기로 다짐한 여러분은 나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보다 더 겁쟁이었던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여러분은

각자가 가진 상실의 아픔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 이 글의 원제는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입니다.

 다만 브런치 북 제목의 제한 글자 수를 넘어가, 불가피하게 <떠나간 이를 위하여 남겨진 이에게>로 연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