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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10. 2023

오빠의 소식을 들었을 때마저 행정법 책을 챙겨갔던 나

제1장. 20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 (1)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언니는 빨개진 눈에 떨리는 목소리로 빨리 짐 챙기라고, 오빠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어.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공부하고 있던 행정법 책을 챙겼어. 오빠는 다 봤겠지? 그 모습을 보며 오빠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오빠의 소식을 들었을 때마저 행정법 책을 챙겨갔던 나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오빠가 생사를 고민하고, 결심을 하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나는 아마 행정법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오빠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른 채로.


 별다를 것 없는 일요일이었다. 2021년을 마지막 시험으로 생각하고 내 모든 걸 쏟아부어보겠다며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던 20년 하반기였기에, 일요일이라고 특별할 것 없이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숨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스터디 카페에서 동그라미, 엑스가 가득 쳐져서 있는 행정법 책을 붙들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었다.


 3년이 지난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언니가 눈이 새 빨개진 채로 내 옆에 왔다. 그리고 울음에 가득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짐 싸라고, 오빠한테 가야 한다고.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오빠한테는 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참 씁쓸한 게,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조용한 스터디 카페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면 안 되는데, 였다. 그리고,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던 행정법 책을 덮고 가방에 넣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어 손은 바들바들 떨렸지만 필기구와 행정법 책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고 스터디 카페 로비로 나왔다. 언니는 계속 울었고, 나는 불안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냥, 크게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거 아닐까. 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했다. 아닐 거야. 그냥, 그냥,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걸 거야. 그러나, 언니는 새 빨개진 눈을 한 채로 말했다. 오빠가 자살했다고. 갑자기 몸이 부들부들 떨렸던 거 같다. 그럴 리가 없어. 어떤 정신으로 스터디 카페에 나왔는지, 그 부분만 새까맣게 지워진 것처럼 아무 기억이 없다.


스터디 카페 밖으로 나오자 아빠 차가 보였다. 가족 모두가 울고 있었다.


오빠가, 죽었다고.

 오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행정법 책을 두 권이나 챙겨 불룩해진 가방이 보였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너는, 이 상황에 책을 챙겼냐고. 오빠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이 길에, 너는 책이나 챙기고 있냐고.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고,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지독한 꿈인 것 같았다. 흐느낌과 통곡이 가득했던 차 안에서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계속 나왔다. 이후의 일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오빠에게 향하는 시간만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정신이 나갈 것 같이 아득했던 것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계속 눈물만 흐르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아니, 오빠가 죽었을 리 없어. 그냥 지금 너무 위급한 상황인 거야. 그래서 오빠가 잘못될까 봐 가족들은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야. 아니, 오빠는 죽었어. 오빠가 병원에 있었다면, 우리가 향하는 길은 ‘병원’이었겠지. 아빠의 내비게이션에 찍힌 장소는 ‘장례식장’이잖아.


 그렇게 마음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치열하게 싸웠다. 어느새 오빠가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까 조금 실감이 났다. 건물 입구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장례식장’과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진짜, 우리 오빠가 죽었구나. 애써 부정했던 내 마음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도착해서 얼마 뒤, 이모와 삼촌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오빠를 발견한 경찰서에 갔다. 서늘하고 조용했던 장례식장 로비에서 이모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말도 안 된다고, 우리 오빠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이건 꿈이라고. 지독한 악몽 속에 있는 거라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엄마 아빠가 경찰서를 갔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들을 봐야겠다고, 우리 아들 어디 있냐고 엄마 아빠는 직원분에게 절규했고, 직원 분은 영안실로 안내했다. 직원이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열자, 오빠가 누워있었다. 원래도 새하얀 오빠였는데, 그때 본 오빠는 너무 충격적이게 하얬다. 시퍼렇게 하얬다. 그 어떤 생명력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예닐곱 보 떨어져 본 오빠에게는 생명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햐얗고, 너무 서늘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소리를 질렀던 거 같다. 말문이 막혀 제대로 된 단어조차도 완성하지 못했다. 저 차가운 시신이 우리 오빠일리 없는데, 너무나도 우리 오빠였다.


오빠의 마지막 길을 지켜줘야 해.

 내일부터 빈소가 차려지고 장례 절차가 시작될 거라고, 직원분들이 우리를 유가족 대기실로 안내했다. 깜깜한 방 안에 누워있자,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꿈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었고, 현실이라기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이 그저 슬픈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내가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커다랗고 실감 나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런지 슬픈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감정은 들지 않고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이 존재했다. 어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멍하니 방 안을 둘러봤다. 문득 남아있는 우리 가족이 눈에 보였다. 가족을 보니까, 녹아내리던 정신이 단단해졌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이다.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줘야 한다고.

오빠가 고통에 빠져 허덕이는 순간은 지켜주지 못했지만, 오빠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만은 지켜줘야 한다고.

오빠를 잘 보내줘야 한다고. 오빠를 잘 보내주려면 정신을 단단히 차려한다고.

그리고, 우리 가족 중 지금 정신을 차려야 할 한 명을 꼽자면 그건 나여야 한다고.


자식을 잃은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오빠와 각별했던 언니, 그리고 오빠와 데면데면했던 나.

굳이 가장 덜 슬플 한 명, 가장 정신이 박혀있을 한 명을 꼽자면 그건 나라고.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장례절차

아주 어렸을 때 빼곤 장례식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장례가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고, 가족들은 뭘 해야 하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핸드폰을 켜 장례 절차를 검색했다. 장례식 순서는 어떻게 되고, 유가족들은 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하지만 대부분 광고성 글이었다. 상조 광고. 이걸 찾아봐서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서 막무가내로 장례식장 행정실 같은 곳을 찾아갔다.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다.


장례가 처음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인의 동생인데, 부모님이 경황이 없으시니까, 나라도 챙겨야 할 게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냐고.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 절차와 상주가 준비해야 하는 것, 유가족이 준비해야 하는 것을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그리고, 오빠 영정 사진이 준비되었다고. 이 사진이 걸릴 거라고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수줍은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오빠가 있었다. 취직에 성공하고 입직하기 전, 한 달 정도 유럽 여행에 갔을 적 사진이었다. 마냥 행복했던 시절의 오빠.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던 시절의 오빠.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랑스러웠고, 모두가 입모아 ’ 위너‘라고 말해주던 시절의 오빠였다.


그런 오빠의 사진을 보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11월이어서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찬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계속 돼 내었다.


‘오빠, 내가 오빠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줄게. 정신 제대로 차려서 오빠가 하늘로 올라가는 마지막 길을 지켜줄게.‘


장례식 첫날의 동이 떠오르던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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