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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17. 2023

오빠를 위한 마지막 공간, 장례식 첫날

제1장. 20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2)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를 떠나보낸 그때도 이렇게 시린 겨울이었어. 날이 추웠던 건지, 마음이 얼어붙었던 건지. 한 줌의 온기조차 없는 날이었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여전히 나는 오빠와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어.


오빠를 위한 마지막 공간, 장례식 첫날


고운 얼굴 한 번 못 보고서 이리 보낼 수 없는데
하얀 손 한 번을 못 잡고서 이리 보낼 순 없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 위에 어찌하다 오르셨소
내가 가야만 했었던 그 험한 길 위에 그대가 왜 오르셨소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긴긴 겨울이 모두 지났는데 왜 나를 떠나가오
      
                                               안예은, <상사화>


검디 검은 상복의 무게


 3년이 지난 지금, 오빠의 장례식이 모두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례식 첫날의 첫 번째 기억은 검디 검은 상복이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검은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 그리고 하얀색 리본이 붙여진 실핀.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다. 이제껏 보아왔던 그 어떤 검은색보다 더 어두웠던 상복의 검은색. 까맣게 타버린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상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 가운데에 걸린 오빠의 영정사진이 눈에 보였다. 이제껏 보아왔던 오빠 사진 중 가장 큰 사진. 그 사진 속 오빠는,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빠의 영정 사진은, 오빠가 취업에 성공한 뒤 직장 생활을 하기 직전 다녀온 유럽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그저 오빠의 행복했던 모습이 큼지막하게 출력된 사진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옆을 장식하고 있는 하얀 국화꽃들이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장례식 장이라고. 저기 저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오빠의 장례식장이라고.


 십 년도 넘게 지난 친할머니의 장례식 이후로는 장례식장에 가본 적조차 없었다. 장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장례식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상주의 역할은 뭔지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는 오빠의 상복은 나와 언니, 단 둘에게만 허락되었다. 얇지만 그 어떤 옷보다 무거웠던 상복은 내게 말했다. 오빠의 마지막 길은, 그 누구도 아닌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장례식에 무지한 나 때문에 오빠의 마지막 길을 망칠 순 없었다. 오빠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내 슬픔 때문에,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이 자리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오빠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받기만 했던 내가, 오빠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오빠의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오빠를 애도하러 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무너지지 않은 채 단단히 바로 서야 했다.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장례식 첫 째날 오전에 찾아오는 사람은 친가와 외가 식구들뿐이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오빠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내 부족한 언어로는 차마 표현조차 못할 만큼 애통해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고 있으니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길, 그 어떤 외부의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면, 당신들은 누군가가 죽어 장례를 치르고 있는 이곳에서 그딴 이야기나 하고 있냐며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통곡 소리가 들리면 여기가 장례식장이라는 게 실감 나서 듣기가 싫었다.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외부의 소리를 차단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 어플을 켜는데 문득, 안예은의 노래, <상사화>가 생각났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상사화. 평소에 자주 듣던 노래였다. 이런 가사를 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랑을 했던 걸까, 애절한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 노래였다. 그저, 슬픈 이별 노래라고만 여겨왔던 그 노래 속 상황이 내 상황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노래를 듣는데, 한 소절 한 소절이 오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머리가 꽁꽁 얼어붙어 소리 없이 울기밖에 못하는, 멍하니 오빠의 영정사진밖에 쳐다보지 못하는 내 마음을 누가 대신 언어로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 왜 이리 고된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고운 얼굴 한 번 못 보고서 이리 보낼 수 없는데.

살아있을 때는 오빠를 향한 마음이 사랑인 줄 몰랐어. 잃고 나서야 이 마음이 사랑인 걸 깨달아서 미안해 오빠. 온마음 다해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못했던 오빠를 향한 내 사랑은 이제 닿을 곳이 없어졌어. 오빠의 그 하얀 얼굴을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이리 보낼 수는 없어. 제발, 가지 마.  오빠, 나 오빠 얼굴이 너무 가물가물해. 너무 오랫동안 못 본 오빠여서. 오빠를 만날 수 있었던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던 그때, 그게 마지막 기회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 위에 어찌하다 오르셨소. 내가 가야만 했었던 그 험한 길 위에 그대가 왜 오르셨소.

왜, 왜 오빠가 그 험한 길을 택했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을 어쩌다 택하게 된 거야. 그 길은 오빠가 오를 길이 아니었잖아. 언제나 빛나고, 대단했던 오빠가 오를 길은 아니었잖아. 언제나 앞선 길을 갔던, 누구나 부러워했던 삶을 살았던 오빠가 갈 길은 아니었잖아. 우울증의 늪에 빠져 삶에 대한 미련도, 의지도 없었던 내가 올라야 할 길인 거잖아. 그 길은, 내 길이었지 오빠의 길이 아니야.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었던 오빠가 오를 길이 아니었잖아. 내가 가야 했던 길을 왜 오빠가 건넌 거야.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긴긴 겨울이 모두 지났는데 왜 나를 떠나가오.

혹독했던 우리 가족의 2020년이었지만, 2021년에는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혹독한 겨울이 우리 가족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봄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 봄을 만들려고 했어. 너무 멀리 와버린 가족과 내 사이는 어찌할 수 없을지언정, 그래도 내가 시험에 합격해서 취업을 한다면 걱정거리는 하나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그 합격 소식이 다른 이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라도 될 줄 알았어. 그 봄이 눈앞에 있었는데, 왜 그 봄을 보지 못하고 가 버린 거야. 마지막까지 걱정거리였던 막내 동생이 보란 듯이 봄을 가져오려고 했는데, 왜 그 봄을 보여줄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나가버린 거야.


오빠를 향한 내 마음 같았다.


우리 오빠가 잘생긴 걸, 이제야 알았어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장례식장 안으로 돌아왔다. 오빠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지켜줄 거라고, 고집스럽게도 자리를 지켰다. 주변 친지들이 잠시 쉬라고,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해도 고집스럽게 일어서서 오빠와 눈을 맞췄다. 그러다 다리가 너무 아프면, 앉아서 오빠를 봤다. 상주 자리에서 오빠를 바라보다 고개가 아프면 정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면에서 오빠를 봤다. 밑에서 본 오빠도, 옆에서 본 오빠도, 정면에서 본 오빠도, 새삼스럽게 새로웠다. 내가 알던 오빠는 이렇게 생겼구나.


 오빠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아니, ‘친하지 않았다’보다는 ‘사이가 안 좋았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서로 10초 이상 얼굴을 마주 대하면 인상부터 찌푸리던 사이었으니까. 아니, 10초 이상 얼굴을 마주 볼 생각도 하지 않던 사이었다. 어색하단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오빠의 얼굴을 이렇게 오래 마주 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오빠의 얼굴이 새삼스러워 쳐다보고, 시간이 좀 지나자 오빠가 보고 싶어서 쳐다봤다. 마지막에는 하루 종일 오빠를 쳐다보고 있어서 눈을 감아도 오빠의 영정사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이 장례식이 지나면, 이렇게 하루종일 오빠를 쳐다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세상으로 돌아가면, 또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오빠를 이렇게 넋 놓고 하루종일 쳐다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고집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얀 얼굴, 서글서글하게 휘어진 눈매, 짙은 눈썹, 부러워했던 높은 콧대, 시원시원한 입, 갸름한 얼굴형까지. 오빠가 너무 잘생겨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우리 오빠, 너무 잘생겼잖아. 한 번도 이렇게 얼굴을 뜯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것 하나 못생긴 게 없잖아. 이렇게 잘생긴 얼굴인지, 왜 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내가 지금 눈을 뗄 수 없는 건, 오빠가 잘생겨서야.


 잘생긴 오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놓칠 수가 없어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뿌예져도, 눈물을 닦는 순간 놓칠까, 눈물조차 닦질 못했다.

잘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 말을 해줘도 장난스럽게 웃어줄 오빠가 없었다.


그렇게, 해보지 못한 말을, 닿을 수 없는 상대에게 전하며 장례식 첫 째날 밤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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