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0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3)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더라. 오빠한테 동생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오빠가 우리를 참 많이 좋아했다고.
나만 몰랐나 봐. 오빠가 날 그렇게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나에 대한 오빠의 마음은, 당사자인 나에게만 닿지 못한 마음이었나 봐. 너무 늦었지만, 지금에서라도 그 닿지 못한 마음들을 향해, 닿지 못할 말들을 건네.
찬란했던 순간과 싸늘한 순간이 한 공간에 있었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나서, 오빠의 직장에 부고소식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재직 중이던 곳에서 조기(弔旗)를 보내왔다. 오빠가 참 좋아했던 곳이어서, 한번 머문 눈길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멍하니 조기를 보고 있었다. 저곳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빛나던 오빠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곳에 합격하고 나서 어깨가 한 껏 올라가 으쓱대던 오빠. 처음 출근을 하며 고운 양복을 맞추던 오빠. 우쭐대며 저곳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명함을 내밀던 오빠. 점점 경쟁률이 높아진다고, 다들 오고 싶어 하는 곳이라며 으스대던 오빠. 그리고 그런 오빠를 보며 엄지를 치켜올리던 많은 사람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찬란했던 시간들을 곱씹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오빠 영정사진이 걸려있었다. 국화꽃들 사이에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오빠.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저곳에 합격해 세상을 가진 것처럼 으쓱해하고, 많은 이들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엄지를 추켜올렸던 오빠였는데. 찬란했던 오빠의 시간과, 시리도록 싸늘한 오빠의 마지막이 한 공간에 모여있었다. 조기와 영정사진을 같이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바라봤다. 오빠, 나는 찬란했던 순간들로 오빠를 추억하고 싶어. 마지막에 힘들어하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오빠가 아니라, 이곳에 합격하고 일을 하며, 누구보다 빛나던 그 시절의 오빠를 추억할래.
만약 나라면, 사람들이 비참했던 시절의 나보다는 찬란했던 시절의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니까.
너무나도 초라한 마지막
내가 아는 오빠는 항상 빛이 나던 사람이었다. 너무 잘나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똑똑한 머리를 가졌고, 이성적이었다. 어딜 가든 당당했고, 자기 신념이 강했고, 함부로 굽히는 법이 없었다. 대쪽 같던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나왔고, 어린 나이에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합격했다. 항상 성공적인, 우쭐한 삶을 살던 오빠였다. 어딜 내놓아도 자랑스럽던 오빠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승승장구했던 오빠의 마지막 공간은 너무도 초라했다. 자살로 인한 죽음은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기에. 빈소도 가장 기본적인 곳에 마련되었고, 오빠의 부고 소식도 오빠와 정말 가까웠던 이들에게만, 극히 소수의 인원들에게만 전해졌다. 많은 걸 이뤘던 오빠의 마지막 길은 허무하리만큼 초라했다. 그 텅 빈 공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억울했다. 지나가던 사람의 멱살이라도 움켜쥐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이렇게 초라했던 사람이 아니라고, 우리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우리 오빠의 마지막은 이리도 초라해야 하냐고. 사랑받았던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누구보다 빛나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자랑스럽던 사람이었다고. 이렇게 초라한 마지막을 맞이할 사람이 아니라고.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자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지막 가는 길에 생전 애정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한 애도도 받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오빠의 마지막에 울분이 터져 나왔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그리고, 한 번도 초라했던 적이 없었던 오빠의 초라한 마지막에 허무했다. 그 누구에게 터놓지 못하고 눈물로만 삼켜내야 했던 감정이었다.
오빠의 사랑은, 닿지 못한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오빠의 직장 동료, 동기분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그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우리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지내던 사람이었냐고. 오빠와 교류가 없었기에 내가 아는 오빠의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오빠의 모습들을 그러모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용기가 없던 나는, 그들에게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저, 오빠가 생전 애정했던 사람들이 오빠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생전 오빠의 이야기는 담지 못했지만, 오빠와 함께 했던 이들이 오빠를 향해 보내는 마음만이라도 담고 있겠다며.
그러던 중, 오빠와 친했던 동기분이 다가와 말했다. 빛이가 동생들을 참 좋아했다고. 동생들 얘기를 참 많이 들었다고. 가족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했던 동기분의 목소리와 눈길에 담긴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애틋하게 우리를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서로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은 적이 생각도 안 날 만큼 서로를 싫어했는데.
틱틱거리는 말투와, 마주치면 어색하게 피하던 눈길, 아니면 인상을 찌푸리던 그 표정에는 애정이 없었는데.
아니야, 오빠가 날 좋아했을 리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오빠가 나를 좋아했다고.
우리는 애정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데.
꿋꿋하게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오빠를 애도해 주러 온 사람들을 잘 맞이해 주는 게 지금 내가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어서. 내 감정보다는 상주로서의 역할이 먼저였다. 그렇게 한참 조문객을 맞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분에 비상구 계단을 향했다. 내 감정 때문에 오빠를 애도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두 주먹을 꽉 쥐고, 두 입술을 깨물어도 새어 나오는 슬픔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누가 내 두 주먹을 꼭 쥐어왔다. 오빠랑 마지막까지 같이 일 했던 사람이라고. 오빠는 좋은 사람이어서, 꼭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오빠는 하늘에서 잘 지낼 거라고. 그러니까 남아있는 동생이 힘내야 한다고.
내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 동료분을 쳐다봤다. 다급하게, 그리고 쉴 새 없이 돼 내어주는 말과 맞잡아준 두 손을 보며 오빠의 시간들을 물어볼 용기가 났다. 우리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우리 오빠 거기서 잘 생활했냐고. 그분은 내가 모르던 오빠를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셨다. 오빠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고. 착했고, 좋은 사람이어서 참 친하게 지냈다고. 같이 장도 보고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냈다고. 오빠는 잘 지냈다고. 그리고,
오빠한테 동생들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고. 네가 그 막내냐고. 오빠가 네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가족을 참 좋아했고, 동생들을 참 많이 아꼈다고.
오빠를 찾아온 오빠의 직장 동료분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했다. 빛이가 동생들을 참 많이 좋아했다고. 가족들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그렇게 오빠의 마지막 길을 찾아온 친구들과 동료들을 보내고 난 새벽, 답답한 마음에 언니와 장례식장 주변을 걸었다.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오빠가 날 좋아했대. 난 전혀 몰랐는데. 난 오빠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그 말을 들은 언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오빠가 너 진짜 많이 생각했어. 둘이 너무 비슷해서 자주 싸웠긴 해도, 너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널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데”
닿지 못한 마음들에게, 닿지 못할 말을 건네며.
오빠를 동경했고, 좋아했다.
오빠는 내 우상이었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무심했고, 무뚝뚝했으니까.
동경하는 이에게 받는 날카로운 말들은 언제나 내게 큰 상처였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피했다. 괜한 기대를 갖지 못하게, 싫어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빠를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지독히도 좋아했고, 지독히도 미워했지만, 지독히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 입맛에 맞는 마음만 애정이라고 여겼다.
투박한 말과 비죽한 표정 뒤에 숨겨져 있던 애정 어린 마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꼭 말로 해야만 사랑인 건 아니었는데.
찬찬히 돌이켜본 오빠의 행동은, 애정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말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던 그 숱한 시간을, 나는 알지 못했다.
닿지 못한 마음을 보낸 이는 이제 닿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
싸늘하고 공허했던 장례식장 한켠에서,
닿지 못했던 마음들을 향해 닿지 못할 말을 전했다.
이 마음만큼은, 닿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빠,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
오빠가 주었던 마음들을, 사랑들을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오빠가 남기고 간 마음들을 그러모아, 보고 또 보면서 그 의미를 알아갈게.
오빠는, 이제 내 사랑을 받기만 해. 그래도 괜찮아.
내가 평생 동안을 보낼 마음도,
내가 한 생명으로 존재했을 때부터 오빠가 보내온 마음에 비할 수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