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0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5)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나는 화장터의 그 시간들을 지독히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그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오빠는 이제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겪었던 그 화장터의 시간은, ‘승화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더 높은 상태로 발전하기 위한 승화의 시간 말이야. 오빠에게는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더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승화의 시간이었고, 나에게는 못난 감정들을 태워버리며 오빠를 향한 순수한 진심만을 남겨두는 승화의 시간이었던 거야. 더 높은 상태로 나아가려면 고통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여전히 아프기만 했던 화장터의 시간이 조금은 위안으로 다가와. 그곳에서는, 이 세상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세상인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장례식 셋째 날, 이제는 정말 오빠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었다.
누군가 내게 장례식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셋째 날이라고 말할 것이다. 첫째 날은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줘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나를 지탱했다. 둘째 날은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셋째 날은, 그날만은 모든 것이 사그라지는 날이었다. 오빠는 이제 사진 속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오늘이 지나면 오빠는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그게 무서웠다. 아무리 차가운 시체일지언정 우리 오빠였고, 만질 수 있었고, 오빠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오빠는 한 줌의 재가 되고 유골함에 꽁꽁 갇혀 그 형태조차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제발, 시간을 멈춰줘.
이 장례식장의 슬픔이 내 삶의 전부가 된다 해도 좋으니
시간아 제발, 우리 오빠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지금에 머물러줘.
셋째 날을 맞이하기 직전인 둘째 날 밤부터, 셋째 날의 시작까지 마음속으로 계속 빌었다. 제발 시간을 멈춰주라고. 오빠가 우리 오빠의 형체로 이 땅에 남아있게 해달라고.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시간은 야속하게만 흘렀다. 너무나도 정직하게 째깍째깍 흘러, 오빠의 마지막을 고했다. 장례식 셋째 날, 이젠 오빠의 빈소를 정리해야 했다.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해 주는 공간마저 없어져버렸다.
오빠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 만났을까. 충분한 애도를 받았을까. 그 힘들었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오빠의 화장터로 향하는 차 안, 창밖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마지막, 마지막 했지만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이제 정말, 화장터에 도착하면 오빠는 없어져 버린다고. 오빠의 몸이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재가 되는 동안,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봐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지켜야 할까.
목 놓아 울며 오빠를 붙잡고 싶진 않았다. 가지 말라고 사정할 수 없었다. 다 놓아버릴 만큼 힘들었던 오빠였고, 그런 오빠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나인데. 무슨 염치로 오빠를 힘들었던 이 세상에 남아있으라고 붙잡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오빠를 붙잡을 자격조차 없었다. 붙잡지 못한다면 보내줘야 했다. 오빠가 잘 떠나갈 수 있도록. 내가 알던 오빠는 분명 미안해서,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걱정되어서 마음 편히 떠나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러니, 오빠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떠나보내줘야 했다. 오빠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해 주며 그의 행복을 빌어줘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오빠의 선택을 존중해 주며, 오빠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 그리고 미안해하지 않도록, 걱정하지 않도록 웃으며 보내주는 것. 내 이기적인 슬픔은 내려놓고, 오빠를 위한 이 마음만 간직하며 화장터를 지키겠다고 되뇌었다.
오빠,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수고했어. 고마웠어. 그리고 이젠 부디 행복해.
화장터, 붙잡고 싶어도 붙잡히지 않던 시간
화장터에 도착했다. 접수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화장터에 오는 차 안에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붙잡지 않겠다고, 평안을 기도하며 보내주겠다고 수없이 다짐한 마음은 화장터 앞에서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나는, 오빠의 평안보다는, 그저 십 분이라도 오빠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길 바라는 이기적인 동생이었다. 제발, 오빠의 순서가 오지 말아 주세요. 여기서 몇 날 며칠을 더 있어도 되니까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이 땅에 오빠가 오빠의 형체를 가지고 있도록 해주세요. 이 기다림이 영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오빠가 그 새빨간 불길 속에서 재가 되어야 하는 그 시간으로부터 간절히 도망가고 싶었다. 그리고 외면할 수만 있다면 평생 외면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에 있는 시계란 시계는 모두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저 활활 타오르는 화장터에 내던지고 싶었다. 아니, 평생 동안 내가 그토록 경외하고 사랑했던 신의 미움 속에 살아도 좋으니, 신에게서 시간을 훔쳐 도망치고 싶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 접수 후 차례를 기다리는 순서가 야속하게도 빨리만 다가왔다. 오빠, 오빠가 더는 그 잘생긴 얼굴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대. 이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새까만 재가 되어야만 한대. 난 어쩌면 좋을까.
결국, 오빠의 이름은 불리고야 말았다. 대기실로 들어갔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오빠가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에서는 애끓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탄과 비통이 그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조그마한 굴 같은 곳에 오빠의 관이 다 들어가자 그곳의 문이 닫혔다. 공간을 매우던 울음소리가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입구에 빨간 불이 켜졌다. 화장이 시작되었다. 오빠가, 새빨간 불 속에서 타고 있었다.
오빠는 더 이상 뜨거움을 느끼지 못할 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오빠가 너무 뜨거우면 어떡하지.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우면 어떡하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주 어릴 때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오빠랑 나랑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는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불이 났다. 같이 나가자고, 여기서 얼른 나가자고 울면서 오빠를 붙잡았다. 그런 나를 보고 오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먼저 올려 보내고 오빠도 곧 나갈 거라고. 그러니까 너 먼저 나가서 기다리라고. 오빠는 불타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만 내보냈다. 점점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오빠의 희미한 미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은 영영 열리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그 꿈을 꾸고 나서 엉엉 울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충격적인 꿈이었다. 오빠가, 오빠가 죽다니. 너무 끔찍한 꿈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깨고 나면 없어질 꿈에 불과했다. 깨고 나니 오빠가 있었다. 틱틱거리고 툭하면 인상을 쓰는 오빠였어도, 일어나니 오빠가 있었다. 지금은, 꿈보다 더 꿈같은 현실이었다. 분명 일어났는데, 깨어있는데 오빠가 없었다. 지독한 꿈이었다. 깨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꿈.
내 두 팔이 타버릴 듯 뜨거워도, 오빠를 놓을 순 없었다.
오빠가 화장터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더 이상 시간을 붙잡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오빠가 그 뜨거운 불길 속에 있으니까. 부디, 아프지 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 정말 야속하게도,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던 화장터의 순서는 그리도 빨리 왔으면서 오빠가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태워지는 시간은 지독히도 길었다.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도, 정직한 시간은 째깍째깍 제 시간을 차분히 도 지켰다. 그렇게 애끓는 화장 시간이 끝났다. 언니는 오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나는 오빠의 유골함을 들었다.
막 화장을 마치고 나온 유골함은 굉장히 뜨거웠다. 추운 날씨 탓에 겹겹이 입은 옷들을 뚫고 그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유골함을 안고 있는 팔부터, 유골함이 닿아있는 가슴께까지, 몸이 타버릴 듯 뜨거웠다. 뜨거운 유골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오빠의 육신에 대한 애끓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온몸이 타버릴 듯 뜨거웠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본가와 가장 가까운 추모원으로 향하는 길, 차를 타도 뜨거운 유골함을 놓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무거우니까, 뜨거우니까, 옆 좌석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빠잖아. 우리 오빠잖아. 우리 오빤데 내가 어떻게 놔. 이 유골함을 놓아버리면, 오빠를 놓아버리는 것만 같아. 이 작은 통 속에 우리 오빠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이걸 놔. 내가 어떻게 오빠를 놔. 차라리 내 팔이 화상으로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 오빠는 못 놔. 오빠는 이것보다 더 뜨거운 불길 속에 홀로 내던져져 그 시간을 견뎌야만 했는데, 나는 고작 이 잠깐의 뜨거움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오빠 얼굴을 떳떳하게 볼 수 있겠어.
언제나 나보다 크고 강했던 오빠가 한 품에 들어왔다. 크고 날카로웠던 사람이라, 이렇게 한 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이 내 품 안에 꼭 들어왔다. 여태껏 한 번도 이렇게 따뜻하게 오빠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온 마음 다해 안아주고 싶었다. 나보다 한참은 작아져 버린 우리 오빠를. 그래서 외로웠던 이생의 마지막 순간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랐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오빠를 안으며 오빠가 있을 추모원에 도착했다. 마지막 예를 차리며 오빠를 내 품에서 떠나보냈다. 집에 가는 길, 조용히 소매를 걷어보았다. 벌겋게 물든 두 팔이 보였다. 그게, 내 눈에는 훈장처럼 보였다. 붉은 훈장. 나는, 언제나 오빠를 놓아버렸던 나는, 마지막에는 오빠를 놓지 않았다고. 오빠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에는 맞닿아 있지 못했지만, 오빠의 유골 온기가 사그라드는 순간에는 맞닿아 있을 수 있었다고.
누군가에겐 미련해 보일 정도로 간절했던 고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