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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31. 2023

행복해, 이 말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제1장. 20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4)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숨이 끊긴 새하얀 오빠를 향해 정신없이 내뱉었다.
“오빠, 꼭 행복해야 해.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오빠는 부디 행복하기만 해 줘 제발.
마지막으로 약속해 줘. 우리 걱정은 말고, 부디 행복하기로”

비록 오빠의 육신은 생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뱉었다.
이 세상에 남은 오빠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 말이라고 생각해서.
혹여 여기에 남은 오빠의 육신이 듣지 못한다면, 저 하늘에 있는 오빠의 영혼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행복해, 이 말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래도, 좋아했던 사람들은 보고 가서 다행이야.


 감사하게도, 오빠는 생전에 좋아했던 사람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었다. 화려했던 오빠의 삶과는 너무 대비되는 초라했던 장례식장. 사인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초라했던 오빠의 마지막. 우리 오빠가 뭘 잘못했다고, 마지막 가는 길이 이리도 초라해야 하냐며 울분을 내뱉던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오빠의 인간관계를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평소에 오빠에게 많이 듣던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해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오빠의 삶을 채우던 사람들이 모두 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빠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었다. 혹여나, 오빠가 마지막 가는 길에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떠날까 봐 전전긍긍해하던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오빠. 마지막 가는 길에, 오빠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오빠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장례식 첫 째날이 지나고, 둘 째날이 다가왔다. 오빠의 육신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입관식이 진행되는 날.

엄마는 둘째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입관식이 진행되고 나면, 사랑하는 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까. 그렇게 오빠의 육신이 관에 들어가고 나면 그 상태 그대로 다음날 화장이 진행되고, 그러면 오빠의 차갑게 식은 육신조차도 볼 수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입관식이 싫지 않았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사진 속 오빠가 아니라, 차갑게 식었을지언정, 생명이 없는 몸일지언정,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오빠를 외면해 왔던 나는, 오빠를 본 지 너무 오래됐기에. 그리고 오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오빠를 꼭 봐야만 했다.


 입관식을 진행하겠다고, 직원분들이 다가왔다. 오빠를 만나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 두 손을 꼭 쥐고 두 눈을 꼭 감으며 돼 내었다.

‘후회하지 말자. 침착하자. 내 감정을 못 이겨 오빠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오빠의 마지막을 두 눈에 꼭 담아두자. 오빠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꼭 다 해주자. 지금 중요한 건 내 감정이 아니야.’ 내 감정 때문에, 고작 내 슬픔 때문에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소리가 울음소리밖에 되지 않는다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았다. 오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그 순간에, 오빠의 얼굴을 제대로 담아두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갈 것 같았다. 정말 마지막이었으니까.


 오빠의 얼굴을 내 머릿속 깊숙이 새겨야 했고, 해주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해줘야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돼 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네 슬픔이 아니야.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오빠를 볼 수 없다는 거야.


이 시간이 끝나면, 정말 영영 안녕이어야 했다.


 그렇게 두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앙다물고 오빠에게로 향했다. 우리 오빠가 있는 곳. 유리창 너머로 오빠가 누워있었다. 평소에도 하얬지만, 그곳에 누워있는 오빠는 너무나도 하얬다. 유리창 너머에서도, 생명이 없는 신체라는 것이 너무나 확연히 느껴질 만큼. 굳게 다문 두 입술 사이로 감정이 울컥 토해졌다. 더 이상 쥐어지지 않을 만큼 두 주먹을 꽉 쥐어도, 두 주먹 틈새로 감정이 새어 나왔다. 곳곳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그마한 공간이 끔찍한 소리들로 가득 찼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계속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흐려져만 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계속 심호흡을 했다. 감정에 져버려, 오빠의 마지막을 놓치지 않도록.


 보고 싶었던 오빠야. 그리고 그 보고 싶었던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갈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야. 이 시간이 끝나면, 이제 정말 못 봐. 마지막이야. 정신 차려.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 줘야 하잖아. 그렇게 계속 돼 내었다.


 장례 지도사가 말했다. 이제,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셔야 한다고. 입관식이 진행되는 내부로 들어갔다. 오빠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았다. 베옷을 입고 새하얗게 질린 채 누워있는 오빠, 보고 싶었던 오빠였다. 너무나도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한 채. 고요한 오빠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기에 누워있는 게 오빠일리 없다고, 왜 그리도 모진 선택을 했냐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오빠의 이름을 애끓는 소리로 읊조렸고, 누군가는 오빠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런 가족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야, 이게 오빠가 듣는 마지막 소리면 안 돼.  오빠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좋은 말을 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만, 그만해. 이러면 오빠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없어. 제발, 오빠에게 좋은 말을 해줘.  


오빠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정신 차리자고 다짐했던 마음과는 달리 계속해서 눈물이 차오르고 떨어졌다. 내 나약하기만 했던 몸은, 정신 차려야 한다는 머리의 명령보다는 마음을 파고드는 슬픔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해서 눈물은 차오르고, 입술에서는 언어가 되지 못하는 비탄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차마 눈물을 훔칠 수 없었다. 1초가 아까웠다. 눈물을 훔치며 검어지는 시야에는 오빠가 없으니까. 차오르는 눈물에 오빠가 흐려지는 게 야속했다. 눈을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당신께 드리고 싶은 마지막 한마디, 그저 행복하기만 해.


차례대로,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차례가 돌아왔다.  하얀 오빠의 얼굴을 쓸었다. 손 끝에 닿는, 그 어떤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오빠의 서늘한 체온이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무섭다고 도망치면, 다시는 만지지 못할 얼굴이었다.  오빠의 얼굴을 끊임없이 쓸어주며 이야기했다.


“오빠, 부디 행복해. 남은 것들은 우리한테 다 맡기고 오빠는 그저 행복하기만 해. 우리 걱정하지 말고, 오빠, 그냥 행복해줘.  부디, 제발, 행복해줘. 너무 아팠고, 너무 고생했던 이생이었으니,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해. 첫째로서, 아들로서, 오빠로서, 한 개인으로서 너무 힘들었지.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기억들은 여기 남겨두고 가. 오빠가 남기고 간 순간들로 내가 더 아파도 되고, 내가 더 힘들어도 되고, 내가 고생해도 되니까 오빠를 아프게 했던 것들은 여기 다 버려두고 가. 오빠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오빠에게 속죄한다고 생각하며 모두 버틸게. 오빠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내가 더 잘할 게. 내가 오빠 몫까지 더 잘할게. 내가 오빠 몫까지 더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오빠는 미안해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그저 행복하기만 해 줘. “


내 말이, 내 진심이 오빠에게 닿길 바랐다. 미동도 없는 오빠에, 조바심이 났다. 오빠가 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오빠에게 닿지 못하면 어떡하지. 우리 오빠에게 제발 닿기를. 제발 우리 오빠에게 이 마음이, 이 말이 닿기를. 육신밖에 남지 않았을지라도, 닿을 수 있기를. 만약 이 육신에 닿지 못하면 하늘에 있는 오빠의 영혼에게 닿기를.


결국, 그 장소가 떠나가라 소리쳤던 것 같다. 평소에 낯도 많이 가리고, 주목받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오빠밖에 안 보였다.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오빠에게 해주던 말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너무나 간절했던 마음이었기에. 기억을 지워만가는 시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간절한 진심이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사람은 죽고 나서도 48시간 동안 귀가 열려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내 말이 오빠에게 닿았겠구나.

오빠는 그 말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었겠구나.


친하지 않았고, 교류도 별로 없었기에 오빠가 주는 것만 받았지 오빠에게 무언갈 준 적이 거의 없었다.

8살 차이 나는 오빠는 내게 언제나 부족함 없는 커다란 어른이었기에, 무언갈 준 적이 없었다.

그런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마음을 쥐어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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