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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18. 2024

오빠가 떠나간 공간을 정리하며

20년 11월, 31살에 멈춰버린 오빠의 시간(6)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와의 추억을, 오빠의 마음을 내 가슴에 소중히 옮겨심은지 벌써 3년이 지났어.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오빠를 느끼고, 더 자세히 오빠를 볼 수 있어. 내 마음이 척박해 오빠와의 기억이 시들지 않게, 나는 열심히 물을 주고 햇빛을 쬐여줘. 오빠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꽃을 피우고 있을 수 있도록. 그러니, 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줘.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언제나 그랬듯 아름다운 꽃을 피워줘.



오빠가 떠나간 공간을 정리하며


대상을 잃어버린 후회

 오빠의 유골을 추모원 한 칸에 안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방식대로 오빠를 보내주었던 장례식장이 끝나고, 우리 가족에게 남은 건 오빠가 떠난 뒤의 현실이었다. 오빠의 사망신고, 오빠가 이 세상에 남겼던 것들에 대한 정리,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오빠를 떠나보낸 뒤 겪어야 하는 상실감과 아픔. 유가족으로서 이겨내야 할 시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둘러앉아 오빠를 기억하며 추억했다. 우리 가족에게 오빠는 어떤 존재였는지.


 살아있을 때는 사랑했지만 비난했고, 감사했지만 질책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비난하고 질책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 마음의 본질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었지만, 표현방식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아니, 언젠간, 나중에라는 단어로 벽을 넘으려는 노력을 미뤄두기만 했던 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피어난 ‘잘못’은 서로를 할퀴었다. 떠나고 나니, 오빠를 향했던 날카로운 말과 행동들은 그 말을 했던 당사자들에게 다시 돌아와 가슴에 박혔다. 이리 떠날 줄 알았더라면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줄걸,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따뜻한 손길 한 번 더 내밀어 줄 걸.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걸. 넓은 거실이 사과할 대상을 잃어버린 후회들로 가득 찼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 이렇게 후회하지 말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자. 떠나가면 이리도 후회만이 남을 것을. 이제부터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우리가 잘 살아가야 오빠도 마음 편히 하늘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한순간에 ‘유가족’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다짐했다. 더 이상의 후회는 만들지 말자고. 오빠가 하늘에서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삶을 잘 지켜나가자고. 한 공간에서, 한 사람을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했던 먹먹한 밤이었다.

오빠의 흔적을 톺아보며.

  그렇게 각자의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이 찾아왔다. 오빠의 유품들을 정리해야 했다. 우리는 오빠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대전의 한 동네로 향했다. 오빠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던 공간이자, 오빠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을 공간. 대전으로 향하는 차 안, 여러 생각이 뒤엉켰다. 무서웠지만, 궁금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오빠가 고통에 몸부림해지며 생을 마감했을 그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아서 무서웠다. 동시에 오빠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갔을지가 궁금했다. 오빠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오빠에 대한 정보 한 조각이라도 간절했기에.


  오빠가 살던 집에 도착했다. 오빠가 신었을 신발들이 놓여 있는 현관부터, 오빠의 허기를 달래주는 공간이었을 주방, 오빠의 취향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오빠방, 같이 사는 분과 같이 먹고 마시는 시간을 가졌을 거실, 그리고 운동용품이 놓여 있는, 오빠가 생을 마감했던 방까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이었지만 왠지 이곳에서 생활했던 오빠가 보이는 듯했다. 먹고 마시고 자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을 오빠의 모습이. 남겨진 유품을 정리하며 떠나간 오빠를 느끼고 싶었다. 오빠가 살았던 집까지 정리가 되면, 오빠가 이 세상에 남긴 자취 중 많은 부분이 뭉텅 뽑혀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취를 내 눈에, 내 머리에 하나하나 소중하게 간직해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오빠가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은 역시 오빠의 방이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책상 위 컴퓨터였다.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참 좋아했다. 참, 한결같은 게임광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던 초등학생 때도, 사춘기 중학생 때도, 공부에 매진해야 했던 고등학생 때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던 대학생 때도,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직장인일 때도. 오빠의 게임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았다. 그런 오빠의 게임사랑을 말해주는 커다란 모니터와 데스크톱,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각종 플레이스테이션 CD, 게이밍 의자까지.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다 엄마한테 혼나던 어렸을 때의 오빠, ‘맘아이’라는 컴퓨터 제어프로그램을 깔아 게임을 못하게 해도 기어코 해킹 프로그램까지 깔면서 게임을 했던 오빠, 몰래 컴퓨터를 하는 걸 엄마한테 고자질했던 내게 버럭버럭 화를 냈던 오빠, 옆에서 나도 시켜달라며 알짱거리는 내게 게임 플레이와는 하나도 상관없는 키보드 키를 누르라고 했던 오빠. 눈치가 빨랐던 나와 오빠의 어설픈 연기 덕에 결국 들키고 말았지만, 동생을 어르고 달래던 따뜻한 오빠. 게임과 관련된 오빠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오빠는 얼마나 신나게 게임을 했을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일 오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다음으로 눈에 띄었던 건 오빠의 책들이었다. 책장 한가득 꽂혀있는 책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참 좋아했던 오빠는 커서도 여전했나 보다.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 제목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오빠는 과연, 어떤 책을 읽었을까. 어떤 깨달음을, 어떤 배움을 얻고자 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의외의 모습을 가장 많이 발견했던 순간이었다. 내게 오빠는 항상 대쪽 같은 독불장군이었다. 자기의 신념과 가치관이 뚜렷하고, 다른 사람이 무어라 말해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사람.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이성을 가진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 뾰족한 말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는 건 항상 나였으니까. 반격해 보겠다고, 내 딴엔 날을 잔뜩 세운 말을 내뱉어도 꿈쩍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상처받는 건 나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빠는, 사람들에게 상처 따위 받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빠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그런 생각을 가져왔던 나를 질책했다. ‘너는 니 멋대로 오빠를 판단한 거 아니야?’라고. ‘듣고 싶은 한 마디, 따뜻한 말’, ‘미움받을 용기’,  ‘나에게 고맙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말그릇‘, ’ 말의 품격‘ 등. 타인과의 관계, 대화법, 심리, 힐링 에세이들이 잔뜩 꽂혀있었다. 어쩌면, 오빠는 강한 척을 했던 걸까. 그런 오빠의 껍데기만 보며 그걸 오빠라고 단정 지어 버렸던 건 아닐까.


오빠는 어쩌면, 장미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 내 기억 속 오빠는,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따뜻했다. 차가운 행동 속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던 오빠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따뜻했던 오빠는 어디 가버리고 촌철살인의 독불장군만 남아있었다. 나는 그런 오빠를 보며, 오빠가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따뜻했던 오빠가 차갑게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빠는 어쩌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인만의 가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아름다워 사람에게 꺾이기 쉬운 장미가 본인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만들어냈듯. 아름다운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있었지만, 나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촘촘히 박힌 줄기밖에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시선을 조금만 올려도 오빠의 진심이라는 그리고 따뜻함이라는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훌쩍 커버린 오빠였다. 그런 오빠에 비해 한없이 어리고 작았던 내 시야에는 오빠의 꽃망울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내 장미가 시들었다고만 생각했다. 꽃이 꺾이고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는 줄기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장미를 쳐다보는 시야가 변한 것뿐이었다. 장미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우뚝 서있었다. 뾰족하게 내뱉었지만, 곱씹어 보면 결국 날 위한 말들과 행동들이 하나둘 생각이 났다. 오빠가 떠나고 나서 억지로라도 자라야만 했던, 그제야 나는 오빠의 꽃을 볼 수 있었다.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싫어하고, 함부로 말하며, 함부로 외면했던. 가시가 두려워 꽃을 볼 용기가 없었던 시간들이 가슴 깊이 박혔다. 제대로 마주 대하며 진심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시간과, 뒤늦게야 알게 되는 오빠의 진심들에 후회가 되었다. 왜, 그때의 나는, 오빠의 말과 행동 속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진심을 보지 못했던 걸까. 왜 날카로운 가시들에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장미를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아무리 후회해도, 어리석었던 내겐 만회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하얀 얼굴 덕인지 대담한 패턴과 색의 옷을 좋아했던 오빠,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오빠, 언제나 어른 같던 글씨체를 가졌던 오빠, 정리 정돈을 지독히도 못 했던 오빠, 끊은 줄만 알았던 담배를 다시 태우던 오빠, 엄마가 사준 그릇을 포장지 채로 찬장에 두었던 오빠, 킥복싱을 배우며 한때 근육 만들기에 혈안이었던 오빠, 누군가에게 달콤한 연인이었던 오빠. 그런 오빠의 흔적 중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은 차에 싣고, 나머지들은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오빠의 물건 중 대다수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졌다. 하지만 오빠가 피워냈던 꽃은 그대로 옮겨 담아 내 마음속에 심었다. 비록 만질 수 있는 오빠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대도, 그것보다 더 소중한, 만져지지 않은 마음과 추억들은 내 가슴속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


 장미꽃이 소중했던 어린 왕자가, 그 한송이 장미를 위하여 온갖 정성을 쏟았던 것처럼. 내 마음속에 옮겨 심은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을 소중하게 지켜나갈 것이다.

그 한 송이의 장미꽃과 함께라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오빠와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오빠의 따뜻함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꽃 피우고 있을 테니.

너의 말투 또 너의 표정 알 수 없잖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네 맘을 얻는 일

네가 날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을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람같은 맘을 내게 머물게 하는 건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널 기다려

어린 왕자가 내게 말했어
사람이 사람의 맘을 얻는 일이라는 게 가장 어렵다고
그렇다며 내게 다가와

어린 왕자가 내게 말했어
지금은 슬프겠지만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다고
나와 함께 웃고 싶을 거라고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피우려고 애쓴 간절함 때문이야.

            -려욱,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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