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채워 온 기록(2)
이번 본가에 내려갔을 때 떨어진 특명. '필요 없는 짐 정리하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언니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실 예정이었다. 다섯 식구가 살던 집에서 두 분이서 사실 집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이사 가기 전에 본가에 두고 간 필요 없는 물건들을 얼추 정리해 짐을 줄여달라고 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묵은 짐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둘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마주했다.
대학교 때 만난 소중한 친구의 첫 번째 프로필 배경 화면은 한지에 서툰 궁서체로 '김공주 오래 보자.'가 적혀있는 한지를 기숙사 책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스물한 살 때 그 친구와 함께 교내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외국인 교류 단체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그 단체의 행사 중 하나에서 내가 그 친구에게 적어주었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스물한 살 때의 다짐이 스물여덟 살인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구나,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사진이었다. 분명 그때 그 친구도 나한테 무언갈 적어서 줬던 것 같은데. 어디로 섞여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 종이를 이번에 본가 방 정리를 하면서 찾아냈다. 뭐였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펼쳐본 종이에는 '윤이나 고주망태'가 적혀있었다. 그 종이를 보며 한참을 깔깔 대다 친구한테 찍어서 보내줬다. '김공주 오래 보자', '윤이나 고주망태'가 일곱 글자로 친구랑 신나게 추억 여행을 떠났다. 우리 대학교 때 이런 일도 있었는데, 기억나? 그때 우리 진짜 재미있었는데. 시간이라는 보따리에 꽁꽁 싸여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푸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리도 재미있고 뭉클한지. 그때는 '대학 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더 힘들어.' 마냥 즐겁진 않았고,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울었던 날들이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애틋하기도 하고, 행복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목표로 치열하게 하루를 계획하며 동그라미 엑스를 쳐내려 갔던 플래너들, 손때가 묻도록 손에 달고 다녔던 요점 정리 노트, 완벽히 내 것이 될 때까지 푸느라 너덜너덜해진 문제집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소소한 쪽지부터 생일이나 기념일 때 받았던 편지들, 어딘가 놀러 갔을 때 가져왔던 팸플릿이나 포스터, 기념품과 영수증들. 대학교 때 학교 방송국 보도기자를 하며 썼던 취재 수첩, 방송 영상 콘디와 대본들, 보도 기사와 보도 영상에 대해 공부했던 자료들. 취업 준비를 하며 치열하게 공부했던 문제집과 기록들.
내 물건들에 담겨있는 기억들이 한 조각, 한 조각 다가왔다. 그 기억들이 한 조각, 한 조각 모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방 정리가 끝날 때쯤엔,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행복과 용기가 가득 채워졌다. 재미있었던 기억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치열했던 기억들은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의 결과가 실패였든, 성공이었든. 이렇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결국 해내는 사람이었고,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문이 닫히면 인생에서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