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매운맛으로 시작하면 다음은 순한 맛이 되려나.
어제 남자친구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든 생각이었다.
'뭐든 매운맛으로 시작하면 다음은 순한 맛이 되려나.'
나와 남자친구 둘 다, 요새 업무로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둘 다 올해부터 기존에 해오던 분야의 일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업무를 맡았다. 나는 시행된 적 없는 유형의 사업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느라 골머리고, 남자친구는 새로운 분야의 업무에, 새로운 회사의 업무 체계가 엉망이어서 골머리다. 수학문제로 비유하자면, 나는 출제된 적이 없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풀고 있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타인이 풀어서 틀린 문제에 대해 오답노트를 작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풀이과정이 거의 지워진 상태에서 오답의 이유를 찾고 다시 정답을 도출해야 하는 상황.
하던 대로 하는 거면 쉬우련만, 새로운 분야여서 낯선데, '하던 대로'마저 없어서 꽤나 난항을 겪고 있다. 그 난항을 겪으면서 요새 주입하려고 노력하는 생각은, 어려운 난이도로 시작하면 이후에 다가오는 문제는 조금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였다.
수학문제를 풀 때도 난이도 '상' 문제를 계속해서 풀다가 난이도 '중'이나 '하' 문제를 만나면 손쉽게 풀 수 있듯, 지금 맡은 업무도 난이도 '상'으로 시작하면 이후에 떨어지는 '중'이나 '하'를 마주해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기를 쓰며 이 생각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보았다. 시련이 다가오면, 시련이라고 칭얼대지만 말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 혹은 '문제 해결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얻는 중'이라고 생각하자고. 인생은 평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으니, 언젠가는 꼭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시련을 일찍 마주하느냐, 나중에 마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에서야 저연차 직원이어서 실수해도 어느 정도 용서가 되고, 그 실수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 주실 팀장님이 있지만 나중에 내가 팀장이 된다면 오로지 내가 그 해결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니 저연차인 지금, 업무 경험이 적다고 쉬운 일만 떨어지길 바라지 말자고. 쉬운 업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 풀이 공식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새로운 공식을 얻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업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방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새로운 방식을 얻어야 한다.
수학 문제도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수학 공식을 이용해 풀 수 있다. 하나의 공식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의 풀이방법밖에 도출하지 못하지만, 여러 개의 공식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방법으로 풀이 방법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어떤 공식을 적용하는 게 문제를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생긴다. 업무도 수학 문제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매운맛 시작인 지금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매운맛으로 시작하면 다음은 순한 맛이 되겠거니,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