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삶은, 성공한 삶이었다.

그저 좋아하기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by 윤슬

오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지식인사이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봤다. <"삶은 원래 고독한 겁니다." 나이 들면 홀로서기가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인터뷰이는 무려 유시민 작가님. 요즘 들어 문득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며 본 영상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싶어 튼 영상이었지만, 여기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일단 내 삶은, 성공한 삶이구나'라는 확신이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터뷰어가 유시민 작가에게 꿈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요새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 꿈을 정해서 그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아마 중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은 직업을 정하고, 그 직업과 관련된 학과를 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 수시 전형을 두고 이야기한 듯했다. 유시민 작가는 그 주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실은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건 쉽지 않다고. 죽을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이 부분을 듣는데, 문득 글쓰기가 생각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강한 열망. 가장 소중한 꿈. 그저 좋아하기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문득, 나한테 글쓰기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전이었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글쓰기가 없는 삶이란. 모든 걸 송두리째 뺏긴 느낌이었다.


끈기가 부족한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서운한 것, 아쉬운 것, 싫은 것 없이 그저 좋기만 한 유일한 것이었다. 재능이 있든, 없든 계속해서 도전하고 계속해서 갈고닦고 싶은 유일한 것이었다. 글을 아침에 쓰는 날이면, 그전 날 밤부터 설렜다. 글을 저녁에 쓰는 날이면,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든 퇴근하고 나면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뭐든 버틸 만했다. 좋았다면 좋아서 글로 풀어내고 싶었고, 안 좋았다면 그 속에서의 성장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삶이 어떤 국면을 맞이하든, 지키고 싶은 단 한 가지였다. 이것만 있으면 내 삶은 그럭저럭 살아지겠노라고.


작년 즈음, 블로그에 글쓰기 책에 대하여 독서 리뷰를 남긴 적이 있다. 아래는, 그 글을 읽고 같은 팀 직원이 블로그에 적었던 글의 일부이다.


T감성 100%인 나는 이 윤작가의 F감성 100%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후루룩 읽곤 했는데, 이번 독후감 후기는 달랐다.
'글쓰기'라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하여. 글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열정과, 살면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지켜내고 싶어 하는 단 하나였음이라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속에서 이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지속해 나가는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써놓은 글을 읽자니 글쓰기에 사무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열망이라는 표현 그 이상이 느껴졌다. 익히 그간 쌓아온 아침, 점심시간의 커피 타임에서 글 쓰는 게 너무 좋다며, 언젠가 자신의 글을 책으로 엮어서 출판하고 싶다던 목표를 들었던 것보다, 글로 마주한 윤작가의 생각은 어떤 책 보다, 영화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과연 나에게는 지키고 싶은 꿈이 있나?'


글이 쉬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가 내 언어의 한계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울 때도 많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삼십 분 동안 고작 몇 문장밖에 쓰지 못할 때도 많다. 그렇게 고심해서 쓰고 나서도, 발행한 글을 다시 읽어보면 자꾸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밟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밖에 안 되는 나의 글이 미웠다거나, 이것밖에 쓰지 못한 내 재능이 아쉬웠거나,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는 글쓰기가 싫어졌던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더 쓰고 싶었다. 그리고 더 잘 쓰고 싶었다. 내 하루가 글쓰기로 종일 가득 차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상상이었다. 미워하는 감정, 아쉬운 감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글쓰기'라는 행위에 그 어떤 흠집도 내지 못했다. 못났던, 잘났던 발행 버튼을 눌러 세상에 내보낸 글들은 다 애틋한 나의 아이 같았다.


그저 좋아하기만 할 수 있는 일.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일. 꿈이라는 단어로도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할 일. 그런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인생이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는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찾아가도 가슴 설레는 일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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