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니, 성장할 수 있는 것이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그 주에 적었던 플래너를 쭈욱 훑어봤다.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체크하고 새로운 한 주의 계획에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 주 간의 기록을 훑어보는데, 감정들이 대부분이었다. MBTI 검사를 하면, 언제고 F(감정)가 90% 이상 나오는 대문자 F인지라, 어떤 일을 보든 감정이 가장 크게 남았다. 내가 쓰고 있는 '블럭식스'라는 플래너는 할 일 옆에 인사이트를 적을 수 있는 란이 있다. 나의 인사이트 칸에는 대부분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을 겪고 나서 기억에 가장 진하게 남는 건 '감정'이었다. 일에 대한 상황보다는 그 일에 대한 감정 위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어떤 일을' 겪었다. 보다는 어떤 일을 겪어서 '이런 감정이 들었다.'라는 식으로. 문득 글쓰기로 생각의 흐름이 넘어갔다. '나의 글에도 감정만 가득했던 건 아닐까'. 내 기억과 생각을 바탕으로 적어나가는 글이니, 이런 사고흐름이 글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의 글을 돌이켜봤을 때, 그들의 글에는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다. 독자들의 머릿속에서도 그 구체적인 상황이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이 말하는 인사이트들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나의 글에는 상황은 없이 감정과 생각만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번 주 글쓰기 목표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로 잡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를 하나씩은 넣기. 묘사할 때는 그림을 그리듯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적기.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그리고 왜 나는 글을 쓸 때 생각과 감정 위주로 적었을까, 생각을 했을 때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했다'이라는 결론이 났다.
상황을 바라볼 때, 그 자체보다는 감정파악이 먼저였다. '직장에서 일이 많다'라는 상황이 주어지면, '부담스럽다'라는 감정이 먼저 인식된다. 그러면 '나는 왜 부담스럽게 느끼지?', '일이 많아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부담을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감정 위주로 문제 파악과 해결 방법을 도출해 왔다. 감정에 대한 통찰력 근육만 쓰다 보니 상황에 대한 통찰력 근육은 약하디 약했다. 한쪽에만 근육이 붙다 보니, 그쪽 근육을 쓰는 게 편했다. 편한 쪽만 쓰다 보니 반대편 근육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채, 쓰고 있는 근육만 자꾸 불어났다.
'상황에 대한 통찰', '이성의 영역'에 대한 부족함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런 걸어 다니는 에프인간..' 하며 한숨이 나오다가,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이 부분을 기르기 위해서 새로운 목표,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성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이걸 길러나가 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고 기대가 되었다. 한 단계 더 성장해 있고 발전해 있을 내 모습이 기대되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미 처음부터 '만렙'을 찍고 시작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끼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허물이 아니라 기회였다.
부족함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다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