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킬로미터 거리를 쉽게 달리는 방법

그리고, 나에 삶에서는

by 윤슬

최근 읽고 있는 이노우에 신파치의 <꾸준함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책 귀퉁이를 접다 못해 밑줄을 두 번씩이나 죽죽 그었던 대목이 있었다.


"2만 킬로미터 거리를 쉽게 달리는 방법"

달려서 먼 곳까지 가기. 예를 들어 지구 반대편까지 달음질을 한다면? 일본에서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언저리까지는 대략 2만 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중략) 그토록 먼 2만 킬로미터 거리를 쉽게 달리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나는 어제 조깅으로 2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꾸준함의 기술> 194~195p)


2만 킬로미터, 지구 반바퀴.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리이다. 작가는 어떻게 2만 킬로미터를 달렸을까?

너무 간단했다. 4킬로미터씩 '꾸준히' 달리기. 한 때 인터벌 달리기로 1분 30초 달리고, 2분 걷고를 23분간 반복한 적이 있다. 그렇게 운동을 하면 총거리가 4킬로미터보다 조금 많았다.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다. 2분 걷기야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1분 30초 달리기를 하는 것도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뛸 정도로의 강도였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루 4킬로 미터는 뛸 수 있다.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4킬로 미터 뛰기를 '16년'간 반복했더니, 아무나 할 수 없는 2만 킬로 미터 뛰기가 되었다. 꾸준히 하기의 위대함을 체감하게 된 대목이었다. 2만 킬로라는 거대한 숫자 앞에서 4킬로미터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꾸준히'를 곱하니 4킬로도 2만 킬로가 되었다.


이 대목을 읽고 최근 새롭게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다. '매일 영어 마주하기'


영어는 내게, 간질간질한 존재다. 간절하진 않지만, 아쉬운 존재. 삶의 우선순위에 있진 않지만, 새해 목표와 이루고 싶은 리스트에는 꼭 들어가 있는 존재. 3년 간 플래너를 쓰며, 단 한 번도 월간 목표와 주간 목표 메인으로 자리 잡은 적은 없지만, 연간 계획 저 귀퉁이에는 매번 빠지지 않는 존재.


아부지가 영어 선생님이기도 하고, 영문과를 나와서 그런지 영어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갈망이 있다. 그냥, 막연하게 영어로 된 텍스트를 막힘 없이 술술 읽고 싶고, 영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어는 막연히 '친해지고 싶은 존재'다. 대학교 다닐 때는 워낙 영어로 된 텍스트들을 많이 읽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가 많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듣고 말하기가 되었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와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어느샌가 영어 실력이 쭉쭉 퇴화했다.


영어 실력이 쭉쭉 주는 게 아쉬웠지만, 또 영어 공부를 하자니 내 하루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가득했다. 글쓰기, 책 읽기, 일기 쓰기, 묵상하기. 한정된 시간에 이것들을 채워 넣다 보면 어느새 토막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마다 포기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그리고 단어 암기'까지. 이것들을 진득하게 할 덩어리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영어공부를 할 때 사두었던 '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이라는 책으로 영어 공부를 할 때면 적어도 30분은 필요했다. 읽고, 모르는 단어 메모하고 암기하고, 원어민 음성파일을 듣고, 쉐도잉 하고. 아무리 빨리 마쳐도 30분이었다. 요즘 일정에는 30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고. '나중에 여유가 되면'이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미뤄두기만 했다.


하지만 "2만 킬로미터 거리를 쉽게 달리는 방법"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토막 시간이라도, 일단 매일 해보자. '목적이 없는' 시간은 영어를 대해보자.


그래서 화요일부터 토막 시간이라는 푼돈을 영어 적금 통장에 차곡차곡 붓고 있다. 버스에 탔는데 앉을자리가 없어 서 있을 때 영어 공부 어플 켜서 영상 하나 공부하기, 점심을 다 먹고 카페 가기 애매한 시간이어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사무실로 들고 올 때 사무실 책상에 놓아둔 원서 읽기, 퇴근길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또 영어 공부 어플 켜서 영상 하나 공부하기. 이 시간들이 눈에 띄는 결과가 되기까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하지만, 4킬로가 결국 2만 킬로가 된 것을 기억하며 조금씩 쏟아부어보기로 다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나으니까. 어차피 버려졌던 자투리 시간이니 손해 볼 장사는 아니니까.


이틀째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십 분씩 원서를 읽고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온 <웡카>를 읽는데, 그냥 읽고 있기만 해도 웃음이 실없이 나왔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다시금 영어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설 레고 좋아서.


이렇게 재미있을 정도로만,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만 간단하게.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 반복한다면 이 시간들이 나의 영어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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