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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이 다른 팀장님들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하기

by 윤슬

최근에 업무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주어진 프로젝트에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한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도 없이 서너 가지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가 설정한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부족해 흔들릴 때도 있고, 좀 더 시급해 보이는 프로젝트에 힘을 더 쏟다가 다른 프로젝트의 일정이 밀리며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아직 직장 생활을 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삼 년 차 직장 생활을 하며 이렇게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때가 없었던 듯하다.


왜일까, 이 부서에 와서 꽤나 굵직한 일들을 여러 번 맡아왔지만 이렇게까지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업무에 대한 혼란의 시작은 이번 상반기 인사발령부터였다. 직장 내에서 평판이 좋던 팀장님이 우리 팀으로 발령이 났다. 사람들은 팀장님을 '엔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타 부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팀장님 너무 좋으신 분인데 부럽다며 말을 건네왔다. 어떤 분이시기에 사람들이 저렇게 입모아 칭찬을 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팀장님을 맞이했다.


새로 오신 팀장님은 인격적으로는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직원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법이 없으셨다. 직원들이 잘못한 상황에서도 피드백이나 조언을 해주실 뿐, 왜 그랬냐고 질책을 하시 법이 없으셨다. 왜 사람들이 엔젤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전 팀장님과는 너무 다른 스타일이었다. 전 팀장님 밑에서 사업 부서의 일을 처음 배웠던지라, 전 팀장님 스타일에 맞춰져 있던 나한테는 어려운 분이셨다.


전 팀장님은 방향을 설정하고 이끄는 프로젝트 매니저형 리더였다. 과업이 주어지면 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그 발굴한 아이디어를 팀장님 손에서 구체화시켰다. 그리고 담당자와 함께 타임라인을 짜고 고 진척사항을 수시로 확인했다. 큰 그림을 팀장님이 그려주시며 일정을 체크해 주셨고, 담당자는 그 큰 그림 안에서 디테일을 채워나갔다. 보고를 들어가면 수정사항이 2차, 3차 생겨 한 번에 통과된 적은 없지만 그러한 피드백 속에 '일을 배운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번 팀장님은 담당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위임형 리더였다. 과업이 주어지면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며 방향을 잡았지만, 그 이후로는 오로지 담당자에게 맡겼다. 보고가 늦어져도 재촉하시는 법이 없었다. 보고를 들어갔을 때도 수정사항이 많지 않았다. 담당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셨다. 거기서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조언을 해주시는 정도였다. 그리고 손이 부족하면 같이 손을 넣어주셨다. 경험 많은 동료 같은 느낌이었다. 자유로운 존중을 바탕으로 두고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전 팀장님과 일을 했을 땐, 나는 주도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팀장님이 일의 진척사항에 맞게 무언가를 지시하셨고, 그 지시사항에 디테일을 잡아가면 되었다. 팀원 입장에서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 편안했다 대신 주도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부족했다. 안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지금 팀장님과 일을 하며, 일의 주도권이 오로지 내게 넘어왔다. 사업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일정관리를 오로지 내가 해야 했다. 누군가 챙겨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에 임해야 했다.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업무 경험이 많이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을 믿고 디테일만 잡아갔던 기존의 업무 방식에 젖어있던 나여서 업무를 근시안적으로 처리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팀장님과 일을 하며 업무에 하나둘 구멍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허탈하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다. 내가 오로지 일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분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헤매고 있는 건, 업무의 다른 근육을 키워야 해서 그런 거라고. 이전 팀장님과의 업무에서는 디테일을 잡는 근육을 열심히 키웠다면 지금 팀장님과의 업무에서는 일을 멀리서 보는 근육을 키워가는 중이라고. 업무 스타일이 다른 팀장님을 통해 부족한 근육을 키워나가는 중이라고.


뭐든 안 쓰는 근육을 처음 사용하려고 하면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사용하다 보면 언젠간 근육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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