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었다.
1.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포용력, 그리고 관찰력이 늘었다. 그 이유는, 내가 보는 것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은 잠시 내려두고, 진득이 바라보고 기억하며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2.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글을 쓰기 이전에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잣대로 분류되곤 했다. 나에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 잘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 좋은 사람 그리고 잘 맞는 사람은 곁에 두었다. 그리고 나쁜 사람, 안 맞는 사람은 not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거리를 두고 시선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관계를 맺을 때 흑백 논리로 사람을 분류하곤 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사람들이 소설 속 ‘인물‘처럼 보이곤 했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이런 캐릭터가 있구나. 나중에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등장시켜 보는 건 어떨까?‘하고 그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책, 영화, 연극, 영상 등 창작된 캐릭터 속에는 모두 양면성이 있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어떤 챕터에서는 ‘선’으로 등장하지만, 또 다른 상황에서는 그 ‘선’이 ‘악’이 되곤 했다. 그리고 주인공 입장에서는 악인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도, 그 캐릭터의 사이드 스토리가 펼쳐질 때면 그 인물만의 이유가 있었고 상황이 있었다. 작가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냈을 때 나는 그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곤 했고, 각자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다는 걸 배우곤 했다.
나와의 관계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캐릭터로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바라볼 때, 가치판단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사람들 하나하나가 작품 속 나오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3.
가장 크게 변한 건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좋았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고, 나빴다면 거기서 글감이 생긴다.’라는 생각이 생겼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부분이 ‘나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속상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걸 ‘모닝페이지’라는 아침 일기를 통해 풀어낸다. 그때 느꼈던 상황, 감정들을 주욱 써내려 가다 보면 내가 이 상황에 취해야 하는 입장과 태도가 도출된다. 거기서 깨달음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상황이 고달프고 힘이 들 때 오히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다. 삶이 평화롭고 행복할 때보다 더욱.
4.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모두 ‘글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했던 것들을, 때로는 마주하기 싫어 고개를 돌려버렸던 것들을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관찰로부터 얻은 소재들에 나만의 색을, 나만의 가치관을,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다 보면 글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더 단단한 내가 되었고, 세상은 더 풍성해졌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책을 출판한 작가가 못 되더라도, 세상에 공인받은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작가’로 두고 사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겠노라고. 그리고 충분히 의미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