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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9. 2024

완벽주의란 병

2024년 11월 19일 - 투병 중인 모든 이를 위하여

어떤 병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점점 기분이 나빠지게 하는데 초조함, 강박, 두려움, 분노, 창피함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주위의 사람에게 짜증을 내게도 만들므로 지인들이 괴로워함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 병을 앓는 사람에겐 힘겹다. 그럴 의도가 없었으며 그들이 상처받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위안해 보지만 해결할 방법을 잘 모르겠다. 내게 있어 완벽주의는 의지에서 한참을 벗어난 병에 가깝다. 병명은 '불안으로 인한 신경증'이라고 붙이면 되려나.


주위에 나와 함께 투병하는 이들이 꽤 많다.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은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각하고 있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병이 대인관계에서 가장 좋지 않은 점은 자각하지 못한 잠복기~초기에는 남을 비난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남의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보면 일단 기분이 좋지 않으며,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를 위한 다는 말과 함께 첨언을 한다. 맞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면 갑갑함은 곱절이 된다. 만약 상대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라면 내가 까야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고 만다. 상대방은 나잇값을 못하는 덜떨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점점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 중기로 넘어간다. 그러나 자각을 한다 할지라도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남을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가둔 채 고스란히 자신이 맞아버리기 때문에 속은 곪을 대로 곪아버린다. 자신감이 없어지며 남이 지적할 것들에 더 기민하게 움직이게 된다. 실패하나에도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초기에 비해서 자기 비하는 최소 2배 이상이기에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은 현격히 높아진다. 그러니 집에서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나을 때가 더 많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하나 하는 것도 버거워지는 지경에 이르면 친구들이 묻는다. "야, 너 요새 왜 그래?"


사실 이 병은 앞서 붙인 병명에서 알 수 있듯, 불안에서 기인한 신경증, 사고뭉치인 나와 주위를 통제해서 나의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얄팍한 방어기제인 것이다. 그러나 통제하면 할수록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은 반작용으로 더 날뛰기 시작한다. 나는 그래서 자유롭게 일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못하는 데 너는 한다는 사실에 질투, 그러니까 부러움에 화가 났다. 주위에서 다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나는 시한폭탄과 같다 느껴진다.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운다.


병을 치유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사람 옆에 붙어서 그 말을 받아먹어야 한다. 그냥 회피성 괜찮아가 아니라, 대책이 있는 괜찮음이어야 한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부터 이겨내야 한다. 분명히 있으나, 나와 결이 맞지 않기에 그와 친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애초에 없을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 약이다 생각하고, 처음엔 '뭐가 괜찮아?'라는 속마음을 이겨내고 열심히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괜찮은 이유를 찾아본다. 그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소화하는 시간을 수차례 아니 수백 차례 겪어낸다. 되도록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과는 되도록 말을 섞지 않도록 주의한다.


완치여부 확인은 아주 간단하다.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하면 되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쓸데없이 화내는 일이 없는지 확인하면 된다. 주위사람들에게서 "너 요새 편해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그것 역시 한 가지 단서일 수 있다. 재발할 수 있으나, 한번 이겨내 봤으므로 심각하게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이클 A.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는 내 안에서 말하는 것들이 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언급한다. 내가 평온한 상태가 되고 싶기에 불안할수록 더 난리가 나고야마는 내면의 속삭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목소리와 나를 분리하라고 지시한다. 평온해지고 싶은 내 본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너무 과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오늘도 투병 중인 나와 모든 이들이 완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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