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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7. 2024

할머니

얼마 전 지인의 부친상 부고를 받았다. 죽음이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앙상했던 모습, 산소호흡기에 자신을 맡기신 그 감은 눈이 선명히 그려졌다. 왔다 갔다 그 중환자실 앞을 돌아다녔다. 서운함은 없었다. 나와 함께했던 즐거웠던 시절이 떠올라서 힘들었을 뿐이었다.


일 년 동안 할머니 생각을 아무리 해도 할머니와의 추억이 기억나지 않았다. 일 년째 되던 날 친구 앞에서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지인의 얼굴을 보고 아버님 영정사진 앞에 헌화를 했다.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 어디로 가야 할지 잃어버린 어린양처럼 천호역을 한참 걸었다. 집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실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강남.


오랜만에 느끼는 우울감에 미친 듯이 두려웠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나를 몰았다. 다독이고 다독였다. '집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집에 가면 편하게 누울 수도 있고 쉴 수도 있어.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죽을 것 같았던 지금도 지나가 있을 거야.'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 상실의 슬픔, 울 자격조차 없다며 스스로를 힐난하던 나에 대한 미안함,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 이 끝없는 공허감 앞에서의 무력감, 혼자서 이겨내야만 하는 이 외로움. 내 존재를 저주하는 이 감정들 앞에 나를 보호할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할머니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살아있길 바라셨기에, 조금만 살이 빠져도 왜 이리 얘볐냐며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셨기에. 나를 힘들게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할머니가 주신 사랑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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