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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관계자를 찾습니다

by 윤슬yunseul

유튜브를 틀면 나오는 각종 영상들. 뷰티, 스포츠, 자기 계발, 게임, 예능 등 정말 다양한 영상들 속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도 유튜브에 들어가면 "모든 것들이 좋아지는 ~ 방법", "~왜 알아야 할까?", "~의 모든 것", "~한 사람들의 특징 3가지" 등 눌러볼 수밖에 없는 영상들이 쏟아져내린다. 막상 들어가서 보면 하는 이야기는 다소 뻔하게까지 느껴진다.


1. 자기를 알아야 한다.

2.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3. AI시대를 맞아 운영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자기를 사랑하고 믿어야 한다.


모두 모르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사회는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좋은 인재만을 사람취급하기만 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 나는 루저 같을 때가 너무나 많다.


나름대로 학벌이 좋은 삶도 살아봤고, 약속만 미친 듯이 잡히는 인싸이더의 삶도 살아봤다. 내 인생은 매일이 도전이었기에 늘 목표를 좇는 삶도 살았다. 그러나 술을 한잔할 때마다 내 가슴에 밀어 넣어둔 결과물들은 알코올에 씻겨나갔다. 아니 애초에 그 가슴에 밀어 넣은 것들이 불편해 술을 마신 것일지도 모르겠다.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 어떤 것을 해보아도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소위 인플루언서들과 바 할 바가 되지 않는다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 무거워지기만 하는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어 막막했다.


내 상태를 좀 알아야겠어서 심리학책을 미친 듯이 파기 시작했다. 인과관계를 철저히 알게 되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명확한 인과관계는 존재했다. 아빠가, 엄마가 그렇게 나를 대했고 할머니가 나한테 그러말을 했으니까. 그리고 내 친구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했으니까. '그렇게'라는 모든 단어 하나로 상대방은 철저히 가해자가 되었다.


내 과거를 파 헤집어놓아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내 삶. 뭔가 잘못되었다는 위험신호가 울려 퍼졌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너무나 벌어졌고, 억울함에 미쳐버리니 우울증 증상도 심각하게 올라왔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 장기를 다 끄집어냈고 원인은 한가득 집어냈으나 다시 봉합하기 위해 장기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걸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그때 대학에서 고전학을 배울 때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전이라는 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통하는 가치관, 사상을 담고 있어야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번뜩이는 생각에 밀리의 서재에서 고전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상 속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이와의 만남은 내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85일에 잡힌 고기를 보며 그가 멍청하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놓지 않음에 감사함이 들었다. '나도 85일 아니 100일 아니 그 이상의 시간도 버틴다면 언젠가 잡힐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간절한 희망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는 낚싯배를 가지고 더 먼 곳으로 가길 꿈꿨다. 과거에 잡히지 않는 자의 자유로움은 내 숨통을 트이고도 남아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그러고 나서 과거의 인연과 결별을 선언했다. 내게 상처를 준 이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용서를 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런'사람이 아니며, 이젠 상처받지 않을 만큼 컸기에. 더 먼 미래로 나아갈 항해의 준비를 위해 닻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최근 후배들이 내게 와서 "롤모델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하며 "어떻게 살지"에 대해 조언을 많이 구했다. 고민을 함께 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롤모델을 갖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알고 있다. '이 사람의 이 모습은 이럴 땐 필요 없어 보여', '잘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물의를 일으켰네'와 같은 말들을 종종 한다. 롤모델을 가지기에 너무나 똑똑해져 버린 세대에 도래했다. 그런 친구들을 데리고 나는 서점에 간다. 그리고 고전학 코너에 데려다주고, 여기서 찾아보라고 조언을 한다.


자신을 알고, 나를 사랑하고 그리고 창의적인 우두머리가 되어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녹록지 않음은 사실이나, 매 시대는 그런 사람을 원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조언해 주는 존재들이 내게 힘이 되었듯, 많은 이들에게는 본인과 같은 삶을 살아낸 이들의 조언 그러니까 깨달음이 극치에 가까운 자가 해주는 나에게 적합한 조언이 필요하다.(이것은 시대불문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책과 조금만 더 친해져 시대를 초월한 조우를 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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