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순

내면의 대화

by 윤슬yunseul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좋아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아빠, 만고상청이 뭐야?"라고 질문을 바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은 만원 할 때 만이고 고는 옛날이라는 뜻인데, 만년이라는 아주 옛날부터 라는 뜻이겠지? 상은 항상 할 때 그 상이고, 청은 푸르다는 뜻이거든? 그럼 합하면 만년동안 쭉 항상 푸르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변함이 없다는 뜻이지." 귀찮을 법도 했으나, 컴퓨터를 하다가도 하나하나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는 아버지가 내게는 백과사전이었다.


원더걸스의 아이러니라는 노래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아빠, 아이러니가 뭐야?"

"응, 그건 모순적이다라는 거야."

"모순? 그건 또 뭔데?"

모순적이라는 뜻조차 몰랐던 내게 아이러니라는 영어 단어를 설명해 주기 시작하셨다.

"창과 방패라는 한자가 합쳐진 건데 말이야. 옛날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어. 창을 팔 때는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어버리는 아주 좋은 창이 있다고 소개를 했고, 방패를 팔 때는 어떤 창도 다 막는 방패가 여기 있다고 설명을 했지. 둘 다 말이 안 되지? 이런 걸 모순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거야. 아이러니도 모순이랑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할 때 종종 쓰지."

모순이라는 단어 정리를 너무나 시원하게 해 주신 아버지의 설명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재생되었다.


오늘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가 가진 모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다. 각자가 가진 사정으로 인해 우리는 창과 방패를 꺼내 들고 적절한 위치에서 창을 겨누고, 또 가끔은 방패를 꺼내 자신을 보호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창과 방패는 어느 정도 대척점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근데 왜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죠? 그러니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라는 요구에 내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니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간단히만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라는 한발 물러서는 답을 듣거나, 혹은 "아니 그건 그때 이렇게 했었어야죠."라고 재단하는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가지 말을 한 사람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전자가 방패라면 후자는 창에 가깝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것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기에 모순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한 대화.


사실 이 대화는 내가 속에서 지껄이는 대화다. 나는 나에 대해 늘 궁금해 성향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심리학 서적을 끊임없이 뒤적인다. 그러다 보면 나에 대해 적힌 파트가 나오면 속에서 소란스러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창과 방패를 들고 끊임없이 나를 찌르고 변호하기를 반복한다. 여러 가지로 나를 소개할 수 있겠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에니어그램에서 나는 여덟 번째 유형에 속한다. 설명 중에서 "타인을 통제하려 듦. 의도치 않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면 속에서 각종 에피소드가 스쳐 지나간다. 동생을 엄청 때린 기억, 아빠와 맨날 싸워서 집안이 늘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기억, 늘 집안을 휘젓고 다닌 나로 인해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셨던 기억.


"아니, 뭐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냥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잖아. 나도 억울하다고, 그게 내 성향 따져가면서 이야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지, 그때 네가 더 참았으면 됐잖아. 그거 못 참아서 그런 거면서 무슨?"


그 기억 사이로 창과 방패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옥신각신거리기 시작한다. 창은 방패를 뚫으려 하지만 방패 역시 만만찮다. 이 기묘한 조합 앞에 나는 중재를 해야만 한다. 성향을 알아보려 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기에 나 역시 물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만 그러겠는가, 누구나 각자 마음에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 그래서 그걸 이해해 보려고 시작한 공부였기에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이해 못 한다는 말을 뱉는 것은 내 취지에 적합하지 않았다. 못 참아서 그런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최악의 선택을 하고자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자고 사는 인간은 없을 테니. 창과 방패 모두를 내려놓고 그래, 나는 그냥 이해를 해보는 것일 뿐이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몰라서 그랬을 뿐인 거야. 그리고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생각정리를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 사는 이상, 우리는 모순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 살아보고 싶은 욕망 그뿐이기에 그냥 안아주면 되지 않나? "참을 수 없었나 보지, 그때 그게 최선이라 여겼나 보지. 많이 억울했나 보다. 그래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너도 네가 뜻하지 않은 결과가 생겨서 마음이 안 좋았겠구나. 그럼 우리 다음엔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결책을 더 찾아볼까?" 창과 방패를 들고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하기에 그 어떤 것 하나 놓을 수도 없다. 이 모순을 어떻게 사용할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고 또 적절히 공격하며 사용할지 생각해 볼 차례임을 기억해 본다. 만고상청 내 마음은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니.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