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거나 상대에 대해 기대를 접고 연을 끊고자 할 때 우리는 '마음이 닫힌다' 혹은 '마음문을 닫았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 상대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이나 꿈,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편안한 상대나 하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마음을 연다, 마음이 열렸다고 말한다. 이 '마음의 문'은 단순히 여닫는 문이 아니기에 좀 복잡하다. 위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능동형과 수동형 모두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공부를 해야만 했던 가정분위기로 인해 취미활동은 절대 할 수 없는 금기였다. 만약 하다 걸리는 날에는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기에, 그렇기에 몰래했어야 했던 그 습관이 몸에 배여 아직도 뜨개질이나 글쓰기 등 여러 활동을 최대한 남 모르게 한다.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왔을 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원래 내가 몰래하던 그 모든 취미들이 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네가 지금 그걸 할 때야?' '너 그거 하다 걸리면 남들이 뭐라 하겠어' '그걸 왜 해?' '어차피 잘하지도 못하잖아. 너보다 잘하는 애들 수두룩할걸?' '걸리면 너 죽는다?' '그거 할 시간에 책한 자 더 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 좋아하던 드라마도 이젠 잘 보지 못한다. 보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기에 그냥 3화 정도 되면 꺼버리고야 만다. 특히나 뜨개질은 영향이 컸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고이 모셔둔 뜨개바구니. 언젠가 다시 취미를 갖고 싶어 다시 꺼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강제로 닫혀버린 그 문을 다시 열려하니, 농협 금고문 마냥 꽁꽁 닫혀 아무리 열려해도 열리지 않았다. 하루는 예쁜 니트를 뜨는 친구를 발견했다. 베이지 색에 하늘하늘한 편물이 내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았다. 거기서 부럽다는 감정과 가지고 싶다는 소유욕이 나를 뒤덮으며,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저거 뜰래." 그 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열려 나를 반겼다. 강제로 닫힌 문은 어느새 강제로 다시 열려 버렸다. 아직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의 문을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바라다보면 그리고 그것이 내 영혼을 깨운다면 언젠가 그곳으로 나는 다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어렵긴 하지만 하나하나 나에게 적용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어내고 있다.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까웠기에 이번에 이 문을 깨부수기 전, 이렇게 글로 토해내 본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 거야!" 언젠가 마음문을 온전히 나 스스로 여닫을 수 있는 날이 와서 이에 대한 글도 써보는 때가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