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고전문학을 참 좋아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의 여운이 아주 깊이, 오래 남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그 책들의 여운이 떠오르곤 했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 정서의 얼굴은 바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가슴저미게 스며드는 감정,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갔겠구나, 하는 작가에 대한 고마움이 일었다.
고전문학을 좋아하던 학창 시절의 나는 죽기 전에 꼭 한 권의 책은 남기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는 책을 나도 누군가에게 남겨주고 싶은 소망이었다. 글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참을 미뤄둔 꿈이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로를 해주고 싶은 대상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사실 학창 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다짐한 소망이었겠지만, 사회생활의 나는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누가 누굴 위로한단 말인가. 가장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
그런 하루들 속에서 만난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는 실제로 나를 위로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독을 이해해 주었다는 것. 제삼자의 시각으로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편지를 통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공감이었고,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은 명문장이었다. 그렇게 외로움과 힘겨움의 나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자신이 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인간의 달빛 같은 감정을 이해한 사람이기에 그의 말들이 더 진솔하게 와닿았다.
그런데, 오늘의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너무 어두운 글들에 얼굴을 찌푸리며 책을 덮어버린 것이다. 지난날의 이 책은 분명 나를 위한 글이었는데, 지금의 나에겐 부정적인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인생을 왜 이렇게 잿빛 세계로만 바라보는 것일까. 좋은 감정이었다가도 이 책을 읽으면 허무주의에 빠질 것 같아 한 장 한 장 읽는 것이 꺼려졌고 나중엔 눈으로만 대충 훑어보기에 이르렀다. 동화되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에. 한편으론 내가 다시 힘든 시기를 마주하게 되면 분명 이 책은 다시 내게 깊은 위로가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달빛보다는 햇빛 아래에 서 있다. 내 인생에 흐르는 빛의 색감이나 마음의 온도가 그렇다. 밤을 잘 보냈기에 맞이한 아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위로보다는 햇살 같은 사랑이다.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 사랑으로 삶을 가득 채우는 희망적인 이야기 같은.
하지만 인생은 낮과 밤이 매일 오가는 것이기에. 햇빛과 달빛이 공존하는 세상이기에. 단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내 마음이 햇빛 아래인 것일지도.
해가 떠 있는 시간, 저 편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달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위로받았던 어제의 내가, 고마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