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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Feb 12. 2019

4. 설날병동

입원일지

시계를 보니 여섯 시 삼십 분이다. 통증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멍하니 병상에 앉아있다가 오늘이 설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이 찌릿하고 오른쪽 허벅지가 저렸다. 다시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자잘한 통증 탓에 자꾸 깼다. 다른 방해도 있었다. 20대 남성 환자 두 명이 경쟁하듯 코를 골았다. 괜히 헛기침하며 막아보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코가 막혔다. 밤새 보일러를 땐 병실은 사막처럼 건조했다. 자연스레 입술과 콧속이 바삭해졌다. 말라 버린 콧물이 콧구멍을 막았다. 세차게 풀어도 도통 뚫리지 않았다.


답답해서 휴게실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통증을 점검했다. 머리 오른쪽 뒷부분이 지글거렸다. 몸의 오른쪽 면이 얼얼했다. 귀싸대기라도 맞은 것처럼 귓구멍 주위가 아렸다.


간호사실이 분주했다. 야간 근무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지만 무슨 문제가 생긴 분위기였다. 어떤 환자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면 병실과 복도 이곳저곳에 토한 모양이다. 간호사 한 명이 동료에게 짜증을 내며 서둘러 걸어나간다.


환자들은 변덕스럽다. 의료진에게 예의를 차리다가도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말을 치며 짜증을 낸다. 막무가내식으로 생떼를 부리는 경우도 많다. 그 최전선을 간호사가 지킨다.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대응한다면 간호사 생활을 버티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사가 넘나드는 공간이 일상인 삶은 어떤 것일까. 간호사실을 훔쳐보며 그들의 찐한 동료애를 느꼈다. 짜증을 내다가도 “너 염색 잘 됐다?”, “귀엽죠?”, (까르르), 대화가 오간다. 적어도 이곳에 태움은 없어 보였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병상에 앉아 비스킷을 꺼내 물었다. 오후 다섯 시에 저녁을 먹는다면 누구나 이 시간에 과자를 먹게 될 것이다.


눕자마자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달그락달그락 배식차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실에 불이 켜졌다. 벌써 일곱 시 삼십 분이다. 이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는 몇 시부터 준비된 것일까. 조리사는 몇 시에 일어나서 집을 나섰을까. 병상에서 식사를 받는 나의 편안함이 누군가의 불편함이라는 생각이 들어 끼니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건 비용을 지급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보조 침대에 올려두고 불을 껐다. 지금은 잘 시간이다. 설날인데 늦잠이면 뭐 어떠리.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간호사가 찾아왔다. 자유롭던 왼팔에 수액을 다시 찔렀다. 반창고 탓일까 주사 부위가 간지러웠다. 긁었더니 붉은 반점이 늘어나 마약 중독자의 팔처럼 보였다.


열한 시 삼십 분쯤에 다시 일어났다. 미뤘던 아침을 챙기고 머리를 감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병상에 앉았다. 창문으로 넘어온 오렌지색 볕이 병실 구석구석에 뻗쳤다. 그 빛을 조명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게 병실에서 새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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