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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Aug 07. 2019

방사선은 바로 죽이지 않아

체르노빌의 목소리, 1997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스테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1만6000원


체르노빌은 미래다. 2019년 5월 10일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전 1호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떤 시험을 수행하는 중 열출력이 제한치를 넘어 18%까지 급증했다. 당시 무자격자가 원자로를 운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수동 정지는 보고와 지시를 거쳐 한참 뒤에 이뤄졌다. 그때의 모습은 1986년 4월 26일에 발생한 어떤 사건과 많이 닮아 있었다.


한 작품이 인기다. HBO의 5부작 시리즈 <체르노빌>이다.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서는 마치 모르던 사실을 새롭게 알았던 것처럼 재미를 느낀다. 그만큼 우리는 무지했다. 당시의 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최악이 사건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흥밋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미로만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종합 상자다. 사고의 원인부터 수습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까지 골고루 다룬다. 하지만 그때의 사고는 고작 5부작의 드라마에 담길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당시 러시아 환경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 그때 피폭된 여자아이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때의 여성들 세 명 중 한 명은 자궁을 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은 체르노빌의 일부일 뿐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당시 관련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사고 현장에 가정 먼저 도착한 소방관의 아내부터, 아이들, 임산부, 군인, 해체 작업자, 정치인, 과학자, 의사, 간호사 등등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 권의 책에 그것들이 담긴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그만큼 책의 밀도가 높다.


작가는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가 핵발전소와 같다는 것을 모른다. 왜 핵발전소를 원자력발전소로 부르는지 모른다. 원자력발전소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어떤 준비로도 그 폭발을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무감각하다.


작품은 인터뷰집이다. 그들의 대화에는 피폭의 무서움이 담겨있다. 일부를 옮겨본다. 사고가 발생하자 벌들이 사라졌다. 마당에는 숨이 끊어진 두더지들이 누워있었다. 발전소에서는 하늘색 빛이 보였다. 빗방울은 수은처럼 떨어지고 물웅덩이는 초록색이나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피폭자가 딸을 낳았다. 아이는 자루였다. 열린 것이라곤 눈뿐이었다. 이불을 빨아도 빨아도 빛이 났다. 아이들은 대머리가 되었다. 할머니 가슴에서는 산모처럼 젖이 나왔다. 대부분의 남자는 비뇨생식기관에 문제가 생겼다. 마흔 정도면 머리가 흰색으로 변했다.


황새가 날갯짓해도 하늘에 오르지 못했다. 참새가 타닥거려도 제자리에서 뛸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염되었다. 나무는 잘라서 비닐로 봉해서 묻었다.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가축은 모두 죽였다. 오염된 흙을 떠내서 더 깊은 곳으로 옮겼다. 여기까지의 내용도 극히 일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한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피해도 전한다. 병에 걸리고 아파서 삶을 떠나는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어떻게 파괴되지를 말한다. 지금도 오염지역에는 일부 주민들이 살아간다. 피폭을 감안하고 산다. 그들은 누군가를 잃어서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그곳이 자신의 삶이므로 떠나지 못한다.


핵은 어디에나 있다.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란다. 그 숫자는 종말을 앞당기기에 충분한 개수라는 말도 붙인다. 하지만 우리는 원자력의 위험성에 무감각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두려움을 배워야 한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전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꼭 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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