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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Nov 07. 2019

조지 오웰과 가까워지는 책

나는 왜 쓰는가, 2010

나무의 나이테랄까. 지난 시간의 흔적처럼 조지 오웰의 발길이 담겼다. 역자는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 29편을 골라 옮겼다. 그중 7편은 예전에 본 민음사의 『동물농장』과 실천문학사의 『코끼리를 쏘다』에 중복으로 실린 글이다. 나머지에서 9편이 흥미로웠다. 주제는 전부 달랐다. 일상을 적은 기록부터 가난, 문학, 글쓰기, 과학, 사상까지 다양하게 다뤘다. 일부를 소개해본다.


<민족주의 비망록>에 실린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알리고 싶다. 오웰은 민족주의를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성이다’고 말한다. 어울리지 않은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더 나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는 자신이 속한 세력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세력은 대학이나 정당, 시민단체처럼 형태가 있기도 하고, 사상이나 신념 혹은 어떤 이유나 믿음과 같이 무형의 존재이기도 하다. 목적은 더 많은 세력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 선악은 없으며,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생각은 언제나 승리나 패배, 성공과 굴욕으로 향해 있다.


오웰의 민족주의는 지금의 시대에도 쉽게 보인다. 최근 이슈가 된 별 4개로 전역한 전직 장성의 기자회견은 좋은 예다. 그는 자신의 명령으로 공관병이 감을 따는 일을 임무 수행으로 보았다. 아들의 바비큐 파티를 준비시킨 행위는 사회 통념상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거짓을 범하면서도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민족주의자의 전형이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1만8000원


<과학이란 무엇인가>도 읽어볼 만하다. 오웰은 ‘자기 직업 세계에서는 아무리 지적으로 철저해도 특정 주제들에 대해서는 언제든 무비판적이고 심지어 부정직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맞다. 경찰관과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기사는 익숙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대방의 직업이나 직위를 알면 자동으로 편견을 가진다. 경찰이나 검찰은 올바르고 법을 잘 지킬 것이라고 착각한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번에는 <정치와 영어>라는 글을 언급해본다. 오웰은 글을 쓸 때 흔히들 써먹는 나쁜 수법을 지적했다. 첫째, 죽어가는 비유. 둘째, 기능어 또는 언어적 의수족. 셋째, 젠체하는 용어. 넷째, 무의미한 단어다. 그는 이러한 지점이 문장의 뜻을 모호하게 만들고 표현력을 떨어트린다고 지목했다. 그리고선 다음의 문장론을 제시했다.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9편의 에세이 중에서 3편을 소개했다. 키워드로 정리하면 편견과 맹신 그리고 글쓰기다. 나머지 글은 느낌만 전해 본다. 주제를 정하지 않고 쓰는 <나 좋을 대로>, 언론 자유에 대해 말한, <문학 예방>, 일상의 상상을 적은, <물속의 달>, 학창 시절을 옮긴, <정말, 정말 좋았지>,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등이다. 읽는다면 조지 오웰의 세계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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